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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여태동의 "땅강아지"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여태동의 "땅강아지"

KAN 편집국 기자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6]

땅강아지

 

여태동

 

6월 가뭄이 기승을 부리던 날

감자를 캤다

물기 한 점 없는 감자

애타는 농심처럼 고슬고슬했다

 

41일 싹이 난 감자를 심으며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겠다고

다짐을 했던 게 주효했다

 

호미를 넣어 알을 꺼내다가

어릴 적에 봤던 땅강아지와 마주쳤다

동그랗게 파먹은 감자 구멍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앙증스런 땅강아지

 

열심히 키워놓은 감자를

이 녀석과 굼벵이가 파먹었다

이상한 사람 만났으면

넌 벌써 이 세상 땅강아지가 아니었다

 

흔들어도 아무 기척이 없다

애시당초 감자 구멍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천연동굴로 안다

 

땅강아지를 쫓아내면서

생각해본다

정말 이 밭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땅강아지라는 걸

   

—『우물에 빠진 은하수 별들』(달아실, 2023)에서

 


[해설]

 

  땅강아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내 기억 속의 땅강아지는 땅의 강아지라는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부지런하고 귀여웠다. 개미가 그렇듯이 볼 때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많은 그리마(돈벌레)나 너무 빠른 바퀴벌레, 꿈틀거리며 겁을 주는 지네나 노래기와 달리 땅강아지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고 정이 갔다.

 

  이 시의 화자는 도시에 사는 농부다. 여태동 시인 자신 농사가 직업이 아니라 부업 같은데 어느 농투성이에 못지않게 농사에 대한 시가 많다. 가뭄 때문에 산천초목이 기력을 잃고 있는 날 감자를 캐기로 했다. 감자를 캐면서 만난 것은 땅강아지. 앗 요놈 보게. 가만히 살펴보니 파먹은 감자 속에 몸을 눕혀 더위를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자는 발로 밟거나 호미로 찍지 않고 살려주기로 한다. 짜식, 좋은 사람 만나서 목숨을 구했구나. 잘됐다.

 

  마지막 연이 의미심장하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은 벌레들이었다. 사람이 개간하고 경작하면서 벌레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다. 농약을 뿌려 말살하기도 한다. 우리가 상시 먹는 과일이나 곡식에 몇 번 농약을 치는지 아시는지? 사과의 경우 갈색무늬병이나 탄저병 퇴치를 위해 20회 정도 농약을 친다. 우리는 야채나 과일, 밥을 먹으며 농약을 함께 먹고 있는 셈이다. 부모님 두 분이 다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현대인이 암에 걸리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무위키에서 땅강아지를 찾아보니 잡식성이라서 식물의 뿌리나 지렁이 등을 먹는다고 한다. 땅속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사는데, 메마른 땅보다는 눅눅하고 양분이 많은 부드러운 땅을 좋아한다고. 네 번 허물을 벗으며, 애벌레 상태로 7~8개월을 지내다가 다음 해 가을에 성충이 된단다. 암컷은 애벌레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며 옆에서 보살피고, 알과 새끼가 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수시로 핥아주는 모성애를 보여준다고 한다. 아파트 화단에 간혹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농약이나 화학비료, 주택 건설로 서식지가 파괴되어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여태동 시인

 

   1966년 소백산과 태백산이 켜켜이 드리운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막지고개(막현마을)에서 태어났다. 불교신문 기자(편집국장, 논설위원 역임)로 재직하고 있다. 경북대 영문학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9<국방일보>에 시 「GOP 전선」을 발표하였고, 2021년 《시와 세계》 겨울호에 「어매의 어매」 외 5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 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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