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문우(文友)가 함께 피워낸 시 한 송이
1996년, 글뜰문학회 문집에 시 한 편이 실렸다. 스무 살 최연석이 쓴 「꽃I」이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꽃아 / 이렇게만 피어라.
문학회 선배였던 시인 이민호는 이 두 행을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2026년, 그는 후배에게 허락을 구한 뒤 이 두 행을 빌려 새 시를 썼다. 「너 자신의 이름으로」다.

1996년, 스무 살이 쓴 꽃
두 사람의 인연은 대학 환경공학과 선후배로 시작해 글뜰문학회 선후배로 이어졌다. 공학도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던 시절, 스무 살의 최연석이 「꽃I」을 썼고 그해 문집에 실었다.
[꽃I / 최연석]
꽃아
이렇게만 피어라.
뿌리는 저승까지
닿을 정도로
줄기는 대나무가
무색할 정도로
잎은 하늘을
안을 만큼
꽃은 계집이
꺾어 버릴 만큼
그렇게만 피어라.
향기는 눈먼 자
이끌 만큼만
열매는 내 고뇌로
허기진 마음을
달랠 정도로
*편집자 주. 1996년 발표작으로, 맞춤법만 현행 표기에 맞춰 바로잡았다.
시는 꽃을 부르는 말로 시작해 자신의 결핍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사이가 가파르다. 뿌리에서 줄기로, 잎으로, 꽃과 향기로 올라가는 동안 저승과 대나무와 하늘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 모두 화자 바깥에 있는 크고 먼 것들이다. 그런데 마지막 열매에 이르러 견줄 대상이 안으로 바뀐다. "내 고뇌"다. 바깥으로만 뻗던 시가 화자 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스무 살이 자신의 결핍을 미화하지 않고 적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첫 행의 기세보다 마지막 행의 정직함으로 오래 남는다.

그만한 표현이 없었다
이민호 시인은 이상향을 주제로 한 시를 구상하면서 후배 최연석의 「꽃I」이 떠올랐다고 했다. 첫 두 행만 한 표현이 없어 곧바로 최연석과 상의했고, 그렇게 「너 자신의 이름으로」 집필로 이어졌다.
[너 자신의 이름으로 / 이민호]
꽃이여
그렇게 피어라
내가 그리워하는 그 모습으로
그렇게 피어라
나를 웃음 짓게 하는 그 모습으로
바람에 잃지 않는 향기로
부서지지 않은 색으로 머물기를
계절을 다 쓰지 않아도
너 자신의 이름으로
오래
햇살에 아름다운
이유가 되기를
기대가 아닌 설렘으로
소유가 아닌 온기로
세상에 환한 숨으로
꽃이여
그렇게 피어라
시는 내가 그리는 모습을 청하며 시작해 꽃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끝난다.
앞부분에서 화자는 자기가 바라는 모습을 말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모습,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모습. 그런데 뒤로 갈수록 '나'가 줄어든다. 기대도 내려놓고 소유도 내려놓는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꽃 자신의 이름뿐이다.
아끼는 마음이 어떻게 놓아주는 마음으로 바뀌는지, 이 시는 그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같은 부름, 다른 꽃
두 시는 같은 말로 꽃을 부른다. 그 뒤가 다르다.
「꽃I」이 꽃을 부르다 화자에게 닿는 시라면, 「너 자신의 이름으로」는 화자에서 출발해 꽃에게 닿는 시다.
세상에 다시 피어난 꽃
「너 자신의 이름으로」는 발표 이후 뮤직비디오와 지면을 통해 여러 경로로 독자를 만났다.
문집 한 권에 실린 채 삼십 년을 있던 시가, 이제 두 편이 됐다. 「꽃I」은 그대로 있고 그 곁에 「너 자신의 이름으로」가 생겼다. 한 사람이 부른 꽃을 다른 사람이 다시 피워낸 것이다.
삼십 년 뒤에도 같은 꽃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에 같은 문학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지금도 서로의 글을 읽는다. 한쪽이 시를 쓰면 다른 쪽이 읽고, 읽은 사람이 다시 이야기를 건넨다. 삼십 년째 그러고 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가 시 한 편을 더 남겼다. 「꽃I」과 「너 자신의 이름으로」는 이제 나란히 놓인다. 스무 살에 꽃을 부른 사람과, 오십 대에 그 꽃을 다시 피운 사람이 함께 만든 자리다.
꽃은 두 번 피었다. 한 번은 스무 살의 손에서, 또 한 번은 오십 대의 손에서. 두 번 다 같은 문학회 안에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