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또다시 물에 잠기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한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또다시 물에 잠겼다.
지난달 내린 폭우로 인해 사연댐 수위가 상승하면서, 36일 만에 햇빛을 본 암각화는 짧은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보존 대책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세계적 문화유산 vs 생활용수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고래사냥 장면을 비롯해 약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진 세계적 유산이다. 하지만 암각화가 위치한 지점은 사연댐의 수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장마철과 집중호우 때면 수위가 오르며 암각화가 잠기고, 가뭄이 지속되면 드러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속에 잠길 때마다 암각화 표면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면 생활용수가 부족해져 울산 시민의 물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의 입장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현장을 방문해 “올해 중에 보존 대책을 확정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수문 설치 계획을 언급했다. 하지만 “수문 설치는 암각화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만, 생활용수 부족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울산시 역시 같은 고민에 놓여 있다. 김두겸 울산광역시장은 “울산 시민이 맑은 물을 마실 권리 또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보존과 식수 공급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우려
문화재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뚜렷한 대책 없이 시간을 허비할 경우 암각화의 훼손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존 상태가 악화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 수자원 전문가들은 수문 설치로 확보 가능한 물이 줄어들면 울산 지역 시민들이 직접적인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해법은 공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는 단순히 울산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유산 보존과 국민 생활권 보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전국적 과제다.
정부와 지자체는 늦어도 올해 안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확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암각화가 계속 물속에 잠기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동시에 생활용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역 주민의 일상에 직접적인 피해가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문화유산 보존이냐, 시민 생활 안정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두 가치를 함께 지켜내기 위한 기술적·정책적 해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울산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