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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미술교육, 이제 ‘큐레이터 양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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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를 넘어 ‘문화 생태계 설계자’를 키워야 한다 이탈리아 Institution의 ‘Course for Non-Curators’가 던지는 질문 한국도 전시기획 중심 교육 넘어 예술·기술·경제·지역·사회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인재 양성해야

세계 미술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큐레이터가 작품을 선택해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관과 갤러리가 이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비교적 명확한 역할 구분이 존재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디지털 플랫폼, 기후위기, 지역공동체, 문화산업, 새로운 경제모델이 예술과 결합하면서 이러한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문화예술계가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전시를 만들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예술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예술 플랫폼 Institution이 운영하는 ‘Course for Non-Curators: New Roles for a Changing Art Field’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명칭부터 흥미롭다. ‘큐레이터 과정’이 아니라 ‘Non-Curators’, 즉 기존 큐레이터의 틀을 넘어서는 사람들을 위한 과정이다.

이탈리아의 예술 플랫폼 Institution이 운영하는 ‘Course for Non-Curators: New Roles for a Changing Art Field’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큐레이터’라는 하나의 직업적 범주만으로는 앞으로의 문화예술 현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문제의식에 가깝다.

 

Institution은 오늘날 상당수 큐레이터 교육이 여전히 전시 기획과 작품 설치, 미술사적 해석 등 기존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본다. 반면 앞으로의 예술현장에는 새로운 형식과 역할, 새로운 기관과 플랫폼을 만들어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는 시간, 현장연구, 언어, 물질성과 신체, 대안경제, 실험적 플랫폼, 새로운 제도와 기관 만들기 등 기존 전시기획 교육과는 다른 주제를 다룬다.

 

예술을 철학, 기술, 생태, 디자인, 교육, 사회연구와 연결하면서 참가자가 스스로 새로운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좋은 전시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강의와 세미나뿐 아니라 워크숍, 공동연구, 프로젝트 개발과 멘토링을 통해 기존 전시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예술 형식을 실험한다.

 

이 같은 시도는 한국의 문화예술 교육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에서도 왜 이러한 교육이 필요한가

 

한국의 문화예술은 이미 국제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국 작가들의 국제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진출이 활발해졌고, 서울은 아시아 주요 미술시장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K-콘텐츠의 영향력 역시 음악과 영화, 드라마를 넘어 미술·공연·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역할 구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 큐레이터는 전시를 만드는 사람,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판매하는 사람, 평론가는 글을 쓰는 사람, 문화행정가는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의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각 분야 사이를 연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 지역의 폐공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이곳에는 작가와 큐레이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건축가와 공간디자이너, 지역주민과 관계를 만드는 기획자, 지방정부와 협의할 행정 전문가, 기업 후원을 이끌어낼 사업기획자,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개발자, 콘텐츠 제작자, 홍보와 미디어 전문가까지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AI를 활용한 예술 프로젝트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예술과 기술뿐 아니라 저작권, 데이터, 윤리, 플랫폼, 수익모델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기존의 ‘작가’나 ‘큐레이터’라는 하나의 직함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이제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문화 생태계 설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생태계 설계자는 단순히 작품을 선택하고 전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소비되고, 기록되는 전체 구조를 이해하며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해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전시를 만드는 교육’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교육’으로

 

우리 문화예술 교육에서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생각하도록 만들 것인가’다. 지금까지 많은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데 집중해 왔다.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는가, 작품은 어떻게 설치하는가, 보도자료는 어떻게 작성하는가, 공공지원사업에는 어떻게 신청하는가 등을 배우는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실무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의 문화예술 인재에게 더욱 중요한 능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미술관은 반드시 건물이어야 하는가.

전시는 반드시 작품을 벽에 걸어 보여주는 형식이어야 하는가.

관객은 반드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AI가 작품 제작에 참여한다면 작가의 개념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지역주민이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온라인 플랫폼도 하나의 문화기관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문화예술기관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젊은 문화예술인에게 기존 미술관이나 대형 갤러리에 취업하는 방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새로운 미술관을 만든다면 어떤 미술관을 만들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미술과 기술을 더 이상 따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변화는 융합교육이다.

 

앞으로의 문화예술은 단독 분야만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미술대학 학생이 AI와 데이터 기술을 배우고,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현대미술과 미학을 공부하며, 경영학 전공자가 문화산업을 연구하고, 건축가가 지역문화와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AI의 확산은 문화예술 교육의 경계를 더욱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이미지 생성, 영상 제작, 음악 창작, 번역, 아카이브, 전시 안내, 작품 분석 등 수많은 영역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AI를 사용할 줄 아는 예술가와 예술을 이해하는 기술자가 함께 필요하다.

‘미술 전공자만 미술을 한다’는 시대는 점차 지나가고 있다.

 

21세기의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수많은 분야가 만나는 플랫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실험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여전히 결과 중심의 평가방식이 강하다.

 

몇 명의 작가가 참여했는가.

몇 점의 작품을 전시했는가.

몇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는가.

언론에 몇 건이나 보도되었는가.

 

물론 공공지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성과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결과만을 중시하면 새로운 실험은 위축될 수 있다.

때로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성공한 전시보다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 교육과 지원제도에서도 연구와 실험의 과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서로 다른 전공의 사람들이 팀을 만들고, 현장조사를 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다시 실행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 되어야 한다.

 

‘미술시장’만이 아니라 ‘예술경제’를 가르쳐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경제다.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좋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과 그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예술적 아이디어가 있어도 운영비와 인력, 공간, 홍보, 유통 구조가 없다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의 예술교육에서는 공공지원금뿐 아니라 기업 후원, 멤버십, 크라우드펀딩, 지식재산권, 콘텐츠 라이선싱, 출판, 교육, 온라인 플랫폼, 문화상품 등 다양한 수익모델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나 문화기획자가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예술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창작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거대한 국가사업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대학, 미술관, 민간 문화기관, 기업, 언론 등이 협력해 소규모 ‘문화예술 실험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20~30명 정도를 선발해 작가, 큐레이터, 디자이너, 개발자, 기자, 문화기획자, 건축가, 연구자, 기업가 등이 하나의 교육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할 수 있다.

 

교육 내용 역시 기존 미술사와 전시기획 중심에서 확장돼야 한다.

 

예술과 AI, 예술과 지역, 예술과 환경, 새로운 전시형식, 문화공간 설계, 문화콘텐츠와 미디어, 예술경제와 후원, 저작권과 데이터, 글로벌 문화네트워크, 새로운 문화기관 만들기 등을 하나의 과정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교육의 마지막 과제는 논문이나 시험이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지역의 빈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거나, 온라인 미술관을 만들거나, AI 기반 전시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지역주민과 함께 새로운 문화축제를 기획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수한 프로젝트에는 실제 실행과 사업화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이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 → 연구 → 실험 → 제작 → 전시 → 사업화’

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술관도 ‘전시하는 곳’에서 ‘인재를 만드는 곳’으로

 

이 과정에서 국공립미술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의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구소이면서 학교이고, 실험실이면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과 함께 젊은 기획자, 문화기술자, 연구자, 프로듀서, 문화창업가도 발굴해야 한다.

 

일부 전시공간을 실험공간으로 개방하고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미완성 프로젝트를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기업의 참여도 필요하다.

 

특히 AI, 플랫폼, 게임, 콘텐츠, IT 기업과 문화예술계가 협력한다면 기존 미술계 내부에서는 쉽게 만들어내기 어려웠던 프로젝트가 등장할 수 있다.

 

언론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완성된 전시를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과 실패, 연구 과정, 새로운 문화적 시도를 기록하고 이를 사회적 논의로 확장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K-Art의 다음 단계는 ‘작품 수출’을 넘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K-Art의 세계화를 이야기해 왔다. 한국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한국 미술품이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K-Art의 세계화는 작품을 해외에 보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가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예술 시스템을 한국이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미술관 모델, 새로운 전시 방식, 새로운 예술교육, 새로운 예술경제, 새로운 디지털 문화플랫폼을 한국에서 만들어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때 한국은 단순히 문화콘텐츠를 수출하는 국가를 넘어 새로운 문화시스템과 문화운영 모델을 제안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

 

Institution의 ‘Course for Non-Curators’가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미래의 미술계를 위해서는 기존 직업에 사람을 맞추는 교육보다 아직 이름조차 없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낼 사람을 길러야 한다.

 

큐레이터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큐레이터라는 기존의 이름과 역할에만 갇히지 말자는 것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이고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이제 질문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큐레이터가 필요한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문화예술 생태계에는 어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길러내야 한다.

 

한국 미술의 다음 경쟁력은 어쩌면 세계적인 작품 한 점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화의 형식과 기관을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

 

참고

Institution, ‘Course for Non-Curators: New Roles for a Changing Art Field’
2026년 10월 27일~2027년 2월 18일
Institution 공식 홈페이지

글 |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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