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14】서숙희의 "잘못 뜬 스웨터를 푸는 시간"

잘못 뜬 스웨터를 푸는 시간
서숙희
실 하나로 연결된 몸통이 해체된다
허리가 무너지고 배와 가슴이 사라지고
잠깐을 울컥하는 사이
생(生)은 목만 남았다
인연은 실처럼 시작된다.
처음엔 그저 얇고 미약한 마음을 한 올, 한 올 엮다 보면 관계가 되고 인연이 된다.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다 어떤 날은 다툴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스웨터가 되기도 하고 모자가 되기도 하고 가방이 되기도 한다.
서숙희 시인의 「잘못 뜬 스웨터를 푸는 시간」은 실존과 무너짐 그리고 잔존(殘存)의 이미지가 마음 깊숙하게 물드는 시였다. 시 표면에는 잘못 뜬 스웨터지만, 그 내면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즉 인연을 넣어 읽으면 잘 읽힌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바늘 코를 놓칠 때가 있다. 그러면 어긋남이 더 커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한 코 한 코 쌓아 올린 시간을 풀어야만 된다. 우리는 목부터 실을 푸는데, 시인은 허리가 무너지고 배와 가슴이 사라진다고 했다. 노력해서 회복될 관계가 아닌, 이름이나 허울 좋은 명분만 남은 관계인 것이다. 고백을 했던 목은 말을 내던지는 경계에 서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이 쌓여 이뤄낸 관계라도 어느 시점에서 삐걱거린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달라 스웨터를 풀어내듯 관계를 새로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오기도 한다.
스웨터를 하나하나 푸는 과정은 고요하면서도 울컥거린다. 손끝으로 기억했던 사랑과 시간은 어딘가로 조용하게 흐른다. 잠깐 울컥하는 사이 생(生)은 목만 남았지만, 앞으로 찾아들 인연은 색색의 실처럼 따뜻하고 곧은 인연들이 찾아들면 좋겠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