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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양선주의 "소녀와 안내견"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양선주의 "소녀와 안내견"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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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55]

소녀와 안내견

 

양선주

 

신분당선 열차가 들어옵니다

 

소녀의 두 눈동자

얼른 두 귀를 연다

 

한 마리는 벌떡 일어나

무릎 옆으로 바짝 붙는다

 

찰나의 틈

소녀는 목줄을 당긴다

 

한 마리의 둘레 앞

지하철이 멈춘다

 

스크린 도어 활짝 열린다

 

사랑하는 사람

큰 마리

 

열차 속으로

한 사람의 거대한 사랑

들어간다

 

―『열렬한 심혈관』(푸른사상, 2025) 

소녀와 안내견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어느 소녀의 거대한 사랑

 

  앞을 보지 못하는 이와 그이와 함께 가는 안내견을 지하철 정거장이나 지하철 안에서 가끔 본다. 내가 본 시각장애인은 남자고 성인이었는데 이 시에는 소녀가 주인인 셈이다. 두 존재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심전심, 목줄을 통해 두 존재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열차가 들어오고, 멎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전동열차가 역 안으로 들어올 때 시각장애인 아이는 손으로 목줄을 당긴다. 위험하니까 얌전히 있어. 열차가 멎으면 다시 당긴다. , 준비하자. 소녀가 같이 타자는 신호를 보내면 안내견은 비로소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마지막 두 연이 감동적이다. 소녀가 개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지, 개가 소녀를 얼마나 따르고 사랑하는지가 짧게 얘기되고 있다. 그 정황을 설명하는 말이 거의 다 생략되고 살짝 언급만 하고 있다. ,

 

  개를 사랑하는 한 사람

  옆의 큰 개 한 마리

 

  한 사람의 개에 대한 거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열차 속으로

  둘이 함께 들어간다

 

라고 쓰면 정황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다. 양선주 시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묘사한다. 산문이 아닌 운문을 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큰 마리가 있다니! 열차 속으로 들어간 것이 사랑이라니!

 

  두 번째 시집인 『열렬한 심혈관』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은 중얼중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시정신은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별 연관이 없는 말을 늘어놓으면 넋두리가 돼 버린다. 압축과 정제(整齊)의 미를 무시한 이 땅의 수많은 시는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할지라도 금방 사라질 것이다. 시는 시다워야 하는데 다변과 궤변이 횡행하고 있다. 절제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양선주 시인의 다음 시집이 벌써 기다려진다.

 

  [양선주 시인]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대학원 응용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시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사팔뜨기』가 있다. 대산창작기금을 받았고, 《소설미학》 동화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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