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해설] 김선영의 "책 병원"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9]
책 병원
김선영
손님들,
차례차례 증상을 말씀해 주세요.
라면 받침대로 쓰여 까맣게 데였어요.
맨날 꼬리만 접어서 뚝 떨어졌어요.
꾸깃꾸깃 구겼다 폈다 몸이 쩍쩍 갈라졌어요.
빨간 싸인펜 죽죽, 형광펜 쫙, 피부가 울긋불긋 부었어요.
전쟁놀이한다고 하도 던져서 너덜너덜해졌어요.
퍼렇게 멍든 이 자국도 좀 봐봐요.
화난다고 비틀어서 휘어진 제 허린 어떻구요.
잉잉, 저두요―.
바닥에 떨어진 저를 자동차가 밟고 갔어요.
데인 곳은 살살 벗겨 하얀 거즈 붙여주고
꼬리 잘린 부분엔 부드러운 천을 덧대어 줄게요.
구겨진 곳은 펴주고, 갈라진 곳은 풀 주사를 놔주고
울긋불긋 부운 곳은 후후 불어줄게요.
너덜너덜해진 몸은 한지 반창고로 감쪽같이 붙여주고
퍼렇게 멍든 곳은 천으로 감싸줄게요.
비틀린 허리와 바퀴에 뭉개진 데는
풀 주사와 허리 펴주는 고무장갑 밴드가 최고에요.
땡기고 아파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토닥토닥 손길에
오늘도 책 병원은 북적북적합니다.
—『토닥토닥 책 병원』(도서출판 소야, 2021)

[해설]
다친 책을 치료해주는 사람
오늘이 5월 18일이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시를 올려야 하는데 마침 동시를 읽는 날인 일요일이라서 동시를 골랐다. 동시치고는 아주 긴데, 부상당한 책을 정성껏 돌보는 책 병원 이야기라서 역사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책 병원에는 다친 책들이 많이 와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집집마다 이사할 때 책이 천덕꾸러기가 된 지 한참 되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이사할 때면 책을 왕창 버리는데 집어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책이 지식의 보물창고 역할을 했던 것은 20세기까지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불에 데고 꼬리가 잘리고 구겨지고 갈라져 있다. 울긋불긋 부어 있고 너덜너덜 해져 있다. 퍼렇게 멍들어 있기도 하고 허리가 비틀려 있기도 하다. 책마다 부상당해 아파하고 있다. 책 치료를 해주는 병원이 지금은 없기에 이 동시의 세계는 환상세계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천문화원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의 책을 빌려볼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김천문화원의 직원이었던 이모님이 추천해준 덕분이었다. 묘하게도 그 도서관에 있는 책은 대부분이 헌 책이었다. 기증받은 책이 대부분이었고 구입한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관장님은 책을 빌려 가는 대신 반납할 때는 풀과 스카치테이프 등을 이용, 최대한 깨끗하게 복구해 오는 것을 명하였다. 해진 책을 정성껏 치료해서 갖고 가면 관장님은 꼼꼼하게 검사를 하고는 칭찬을 해주셨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대학 졸업 후 나의 첫 직장이 출판사였다. 책이 한 권 만들어져 서점에 깔리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버리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이 동시를 쓴 김선영 시인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은 기분이다.
[김선영 시인]
김선영 시인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으며 2008년 《아동문예》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2025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음으로써 시단에도 등단. 펴낸 동시집으로 『바람 빠진 자전거』, 『주렁주렁 복주머니』 등이 있다. 현재 미디어 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shpoe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