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29】 해고 사유 둘이나 겹친 연휴
해고 사유 둘이나 겹친 연휴
김선호
연휴 끝자락 통성기도 빗소리와 섞이는데
붉은 제복 쫙 빼입고 늘어선 적군들이 느닷없이 쳐들어와 천지사방 진을 치고 그것도 직장이라고 해고통지 보내나이다 화이트칼라 아니꼽게 거드름을 떨더라도 검다고 무시하고 없다고 업신여겨도 손발만 자유로우면 천국으로 믿나이다 궂거나 거칠거나 부르면 달려가서 한 사발 땀을 쏟아야 하루 겨우 때우나니 일수를 못 찍은 뱃속 총성 점점 크나이다 세상사 총량제라니 강우량이라 다르리까 어차피 파직되어 속만 끓는 연휴 내내 궂은비 미리 주시니 고맙고 기쁘나이다 가불한 봉급날은 빈 봉투만 만지듯이 사치 심한 어느 졸부 카드 한도 바닥나듯이 몽땅 다 내려주소서 은총이듯 쏟으소서 적군이 물러가서 복직할 일터에는 맑은 하늘 산들바람 그런 날씨 만드소서 그래서 공치는 날이 더는 없게 하소서
쉴 사유 둘이 겹치니 울화가 반으로 준다

이념 논쟁에 신물이 났는데도, 굳이 색깔로 화두를 연다. 시월 들어 유례없는 긴 연휴를 보냈다. 달력에 빨간 숫자가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이다. 4일과 11일이 파란색이지만 쉬는 날이고, 검은색인 10일은 대부분 징검다리 휴가를 했으니 그 역시 붉게 물든 셈이다.
직장인도 그렇지만 일용노동자도 연휴는 대부분 쉰다. 연계되는 일자리가 줄기 때문이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 연휴는 더욱 그렇다. 일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이 쉬는 그들에게 빨간색은 적군이나 다름없다. 평화롭던 일상을 열흘이나 짓밟은 붉은 군대다. 인력시장을 통해 걸리는 일이 힘들고 마뜩잖더라도, 그 일로 생계를 꾸리는 그들에게 손발 묶인 빨간 날은 눈엣가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휴 동안 비가 잦았다. 궂으면 건설 현장이나 농사일 같은, 옥외에 투입되는 노동자는 쉬어야 한다. 안전이나 작업 특성상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하루 단위로 해고통지가 날아든다. 연휴야 대개 일거리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평일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야속하고 얄미우랴.
소싯적 너무 마셔버려 끊었다고, 평생 총량 완수했다고 허세 떠는 영웅담을 듣는다. 정말로 세상사 모든 일에 총량제가 있을까? 하늘에 사는 비도 연휴 때 다 내려오기를, 그래서 연휴 끝나고는 일할 수 있기를 애원하는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다. 연휴 끝나자마자 시작한 비가 다시 오락가락한다. 수복된 땅에서도 뱃속은 꾸르륵꾸르륵 총성으로 들끓는다. 큰일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