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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6] 윤수천의 "슬픈 립스틱" 외 5편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6] 윤수천의 "슬픈 립스틱" 외 5편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슬픈 립스틱5

 

윤수천

 

사랑은 위험한 것

외줄타기처럼 위험한 것

그러나 아름다운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그림자

 

외로울까 봐

항상 붙어 다닌다

너무너무 사랑하다 보니

저승까지도 함께 간다.

 
 

당신

 

당신 만나려고 세상에 왔나 봐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온 꽃 한 송이

당신!

그 설렘 맞으려고 아침이면 해가 뜨나 봐.

 

—『당신 만나려고 세상에 왔나 봐』(시와에세이, 2023.7.3.)

 
 

연인

 

먼 사람 하나 마음에 넣고 살아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지만

얼마나 행복하다고

그 사람하고도 한세상 사는 거잖아.

 
 

먼 곳, 먼 사람

 

먼 곳은 설레게 한다

먼 하늘, 먼 지평선, 먼 바다

먼 사람은 그립게 한다

먼 이름, 먼 얼굴, 먼 입술.

 
 

메아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있다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들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있다』(시와에세이, 2023.10.10.)

 

 

A distant view of a couple walking along a beach path, seen from behind
[ 이미지 : 류우강 가지}

 

 [해설

 

  살아 있을 때 사랑하라

 

  윤수천 시인 겸 동화작가가 3개월 상간에 2권의 시집을 냈다. 그런데 2권 다 4행시집이다. 시기적으로 보아 이 2권 시집은 지금 우리 시단에 붐이 일어난 4행시집의 선구자격인 시집이다. 서정시학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4행시집의 첫 권이 나온 것이 20245월이었다. 최동호 시인의 『생이 빛나는 오늘』을 시작으로 이하석, 김수복 등이 4행시집을 내어 올해 안으로 10권째의 4행시집이 나온다고 한다.

 

  4행시집이 유행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시의 장형화와 산문시형 유행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평론가가 없었다. 게다가 난해하기까지 한 현대시에 염증을 느낀 습작기의 독자들이 시낭송가, 시조시인, 디카시인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시인들은 횡설수설 자기도 모를 말을 뇌까리면서 무덤을 파고 있었다. 한두 명 출판사 고용 평론가가 그 시집을 상찬하는 동안 독자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소월, 백석, 윤동주, 신경림의 시집을 읽었고 류시화, 용혜원, 원태연, 이해인의 시집을 읽었다.

 

  윤수천의 4행시집 2권에서 3편씩의 시를 가져왔다. 모두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4행시다. ‘4’라는 숫자는 춘하추동, 기승전결, 동서남북, 생로병사, 전후좌우 등을 생각하면 가장 완벽한 숫자다. 교향곡도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제외하고는 4악장으로 되어 있다. 4행 속에다가 시인은 사랑을 담았다.

 

  여든이 넘은 시인의 사랑 노래가 이렇게 젊다는 것이 나로선 불가사의하다. 시인이 지금 사랑에 빠져 이런 시를 썼을 리 없고(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내실까?) 젊은 시절에 했던 불꽃 튀는 사랑을 떠올려보면서 여러 편을 썼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절묘하다. , 이런 말은 지금 사랑에 빠진 이만이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거듭 감탄하면서 읽고 음미하게 된다. 100% 맞는 말씀이다. 사랑은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다. 짝사랑은 슬픔과 기쁨이, 그리움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것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우리는 사랑했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사랑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산 주검이요 죽은 생명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전에 사랑을 받아봤으면 지금 외로워도 참을 수 있고, 전에 사랑을 해봤으면 지금 괴로워도 견딜 수 있다. 사랑은 우리를 눈멀게 하고 눈뜨게 한다. 윤수천 시인의 사랑학 개론을 듣고 있자니 비록 불혹과 지천명을 넘어 이순의 나이에 이르러 있지만 처절한 사랑, 혹은 참담한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 집에서는 당장 쫓겨나겠지만.

 

  [윤수천 시인]

  

  1942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국학대학 국문학과 2년을 수료했다. 1974년 《소년중앙》 문학상에 동화 「산마을 아이」가 우수작으로 당선되고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항아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34년간의 공무원직을 명예퇴직한 이후에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 국방일보 논설위원을 했고,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자문위원, 수원문인협회 고문을 맡고 있으며, 창작 및 문단활동 외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꺼벙이 억수』는 2007년 한국의 창작동화 50,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추천도서에 선정되는 등 학부모와 어린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집이다. 동화집 『할아버지와 보청기』『행복한 지게』『별에서 온 은실이』『꺼벙이 억수』『쫑쫑이와 넓죽이』를 포함해 80권의 책을 냈다. 동시 「연을 올리며」와 시 「바람 부는 날의 풀」은 교과서에도 실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고 몇몇 작품은 중국, 일본 등 외국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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