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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9] 이구재의 "좁교라는 가축을 아시나요"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9] 이구재의 "좁교라는 가축을 아시나요"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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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교*라는 가축을 아시나요

 

이구재

 

히말라야 끝자락

티베트 국경 근처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막

무스탕(mustang)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 히말라야에서 가장

슬프다는 짐승 좁교가 살고 있다

그는 오로지 사람들의 짐을

대신 져 주기 위해 태어났다

 

어미 물소의 힘을 받았고

아비 야크의 튼튼한 심장을 가졌다

 

해발 4,000km의 고산 지대

풀포기 하나 없는 돌짝길 흙먼지

거친 자갈밭 좁은 절벽을 지나

작은 몸에 25kg의 등짐을 지고서

꾸벅꾸벅 소리 없이 걷는다

온순하여 더욱 슬픈 눈망울로

 

어둑살이 깔리는 도시

퇴근 시간 마을버스에 실려

산동네를 오르는

어깨 굽은 가장

지구에 매달려 사느라

고단한 걸음 꾸벅꾸벅

우리들의 아버지도 그랬었다

 

주인을 먹여 살리는 짐꾼 좁교

가족을 먹여 살리는 우리들의 아버지

좁교의 식량은

아침저녁 두 홉의 옥수수 알갱이

 

보라바람* 불어쳐도

모진 추위에도 더위에도 걷고 또 걷다가

한 생애 십 년

수명이 짧아 더욱 슬픈 짐승

좁교를 알고 나서 하늘을 보니

눈물 빛 낮달이 걸렸다.

 

*좁교(zhopkyos): 히말라야 저지대에 사는 암소를 고산 지대에 사는 야크에게 끌고 가 인위적으로 교배시켜 낳은 짐승. 심폐 기능이 뛰어나고 힘이 세지만 온순하여 가축으로 길들여 네 살이 되면 짐꾼으로 일한다. 수명은 십 년이다.

*보라바람: 높은 고원에서 갑자기 불어내리는 차갑고 센 바람.

 

—『시월 대관령』(글나무, 2023)

좁교 

   [해설]

 

   좁교의 슬픈 운명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과의 사이에 태어나서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다. 몸이 아주 튼튼해 무거운 짐을 싣고도 머나먼 길을 갈 수 있다. 수컷은 생식능력이 없어 장가도 한 번 못 가보고 죽는다. ‘좁교라는 이름의 동물이 있는 줄 몰랐다. 이구재의 시집을 읽다가 만난 시에 나오는 이 동물은 암소와 야크 사이에서 태어난 교배종으로 역시 힘이 세고 온순하여 주인의 사랑을 받는다. 야크는 고지대에만 살 수 있는데 좁교는 산의 높이에 구애받지 않고 터벅터벅 잘도 걸어간다.

 

  인터넷에 들어가 좁교의 사진을 보니 하나같이 착하게 생겼다. 좁교는 물소 암컷을 4000m가 넘는 높은 산으로 몰고 올라가서 야크 수컷과 교배를 시켜 태어난 동물이다. 좁교는 성질이 온순하고 힘이 센데 털이 적어 무더위에도 일하기 좋은 동물로 길러졌다. 고지대나 저지대를 두루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히말라야의 험준한 곳에서 부려먹기 적격이라고 한다. 태어나서 3~4년부터 일을 시키기 시작해 10세 정도 되면 죽는단다. 아가씨를 사귀지 않는 수컷, 총각을 연모해본 적 없는 암컷. 그래서 더 불쌍하다.

 

  시인은 좁교의 운명을 아버지의 인생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좁교를 보니(직접 봤는지 여행 소개 텔레비전 다큐 프로에서 봤는지 모르겠다) “퇴근 시간 마을버스에 실려/ 산동네를 오르는/ 어깨 굽은 가장인 이 땅의 아버지들이 생각났다. 종일 일터에서 죽으라 하고 일만 하는 아버지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아버지의 노동으로 가계가 지탱되는 집이 어디 한두 집이랴. 지금 이 시대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이구재 시인은 아버지 편이 되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그만 편찮으시고 좀 쉬도록 하세요.

 

  그래도 아버지는 식구들 앞에서 큰소리라도 칠 수 있고, 자식에게 막걸리를 사오게 할 수도 있다. 좁교는 맛있는 것 배불리 먹은 적도 없이 그저 순한 눈망울을 굴리며 무거운 짐을 싣고 앞만 보며 걷는다. 네팔 정부가 몇 년 전에 60kg 이상은 싣지 말라고 법령을 발표했지만 지켜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로 무거운 짐을 지고 험준한 산길을 가다가 실족하거나 다리가 부러져 죽기도 한단다. 좁교는 좁은 산길 곳곳에 있는 마을에 필요한 생필품이나 관광객들에게 제공할 양식을 지고서 오늘도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구재 시인]

 

  평북 강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람. 주문진에서 50년째 살고 있음. 1979년 서정주, 문덕수의 추천을 받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주문진항』『나무들의 웃음』『슬픈 보석』『바다동네에 눈 내리는 날』『초록의 문』『그리움은 지나야 온다』 등. 강원문학상, 관동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허난설헌시문학상 수상. 강원여류산까치 창립 회원. 해안문학 회장, 강원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역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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