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3】 벼룩도 낯짝 있는데
벼룩도 낯짝 있는데
김선호
앞산 알밤 널브러져 꼬인 심사 풀어놓네
농약값도 안 나오니 제발 좀 그만두고 짧은 여생 이제라도 허리 펴고 사시라요 이참에 죄다 벨 테니 그런 줄 아시라요 공갈 반 애원 반으로 닦달하는 자식에게 그걸 베면 날 베는 거니 그런 소리 말거레이 한평생 속정 줬는데 그러는 게 아니레이 그 말씀 유언 된 지 한참 지난 밤나무 산은 아직도 저희끼리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고개 점점 길게 빼는데, 방제를 하나 전지를 하나 그렇다고 풀을 베나 기후는 사나워지고 병해충은 극성떨고 기력은 날로 떨어져 여기저기 삐걱대네 옆구리가 허전하니 옛 생각만 자꾸 나고 누구라도 찾아오면 응어리가 풀어질까 차라리 그때 베일걸 설움만 복받치는데 때마침 추석이라고 모여든 자식들이 알밤이나 주울 양으로 뜬금없이 올라가니 저마다 구멍을 내고 벌레만 퉤퉤 뱉네
벼룩도 낯짝 있다며 염치 좀 차리라 하네

밤나무에 심혈을 기울이는 아버님을 볼 때마다 자식들은 만류했다. 수지타산 운운했지만, 노후를 평안히 모시려는 속내 때문이었다. 평생 농촌에서 당신의 분신들과 동고동락하셨거늘, 절연이 어디 쉬우랴. 돌아가실 때까지도 앞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셨다.
그런 분이 돌아가시자 밤나무는 졸지에 고아로 전락했다. 관리 안 하는 자식들은 자연산(?)이라는 포장으로 핑계를 삼는다. 누가 오거나 말거나 나무는 철 따라 제 할 일 묵묵히 한다.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아람 벌어 떨어진다. 하지만 겉으론 멀쩡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곪아 터진다. 몸도 마음도 괴로울 터, 그러니 제 몸에 구멍을 숭숭 내고 투정하는 게다. 밤나무한테 한 방 얻어맞고 돌아서는 발길에 쇳덩이가 매달린다.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어디를 막론하고 비상이다. 200만을 유지하던 농가인구도 올해 100만 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통계청의 ‘2024년 농림어업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농가인구는 200만 4,000명인데, 직전년도 대비 8만 5천 줄어든 수치다. 1970년 1,442만, 1980년 1,083만, 1990년 666만으로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1년 300만 대가 무너졌다. 이 추세라면 2030년대 중후반에는 100만 대도 무너질 전망이다.
더 심각한 건 농촌의 고령화다. 2010년 31.1%던 고령화비율은 2020년 42.2%, 2023년 52.6%로 절반을 넘더니 지난해는 55.8%다. 노인들만 살게 될 농촌이 머잖았다. 고령화는 유휴경작지 증가로 이어진다. 2015년 경지면적은 167만 9천ha인데, 2020년 156만 5천, 2023년 152만 8천, 지난해는 150만 5천ha로 감소세가 진행 중이다. 농사지을 인력이 없는 농촌, 잡초만 무성한 논밭이 묘책을 내놓으라며 시위하는 요즘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