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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그 나무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그 나무   

 

김영희 

 

 

    큰 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있다. 기둥은 굵고 잎은 무성하여 언제나 푸르름을 선사한다. 기둥과 가지는 진짜 나무를 잘라서 만들었고, 나뭇잎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을 가지에 꽂았다. '가짜 나무' 라고 생각해서인지 특별한 기대도 없이 지냈다. 그렇게 5년쯤 지난 후부터는 그 나무가 구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인가. 처음에 기대했던 푸르름은 이제 생명을 다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추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큰 나무가 한쪽을 버티고 있으니 인테리어를 바꾸려면 그 나무부터 잘라내야 공간이 시원하게 재구성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나무가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소품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나무 때문에 공간이 더 구식으로 보여서 없애고 싶은 마음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내에 통나무와 푸른 잎이 천장까지 뻗은 나무가 있는 현대적인 흰 벽의 방을 수채화 스타일로 표현
그 나무 _ 김영희 수필가 [이미지:류우강 기자]

    나는 그럴 때마다 직원들한테 그 나무의 존재 가치를 묻곤 했다. 이번엔 꼭! 잘라내리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딸을 비롯하여 어느 한 사람도 그 나무를 없애는 것보다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겠다며 내 생각에 찬성해주지 않았다. 솔직히 어느 한 사람 만이라도 내 생각에 찬성해 주었다면 나는 가차 없이, 속이 후련하게 그 나무를 없애버렸을 것이다. 미련 없이. 생명도 없는 나무이니 죄책감도 당연히 있을 리 없다. 그 나무를 없애서 변화를 주어야만 유행에 앞서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됐나. 결국 그 나무를 없애지 못하고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면 빨간 리본과 방울로 풍성하게 장식하고, LED전구까지 감아서 오픈 시간부터 마감 시간까지 많은 전구들이 깜빡이며 사람들을 반갑게 맞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추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다. 그렇게 좋든 싫든 그 나무와 나는 오랜 기간을 함께 해왔다. 

 

     5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그 나뭇가지에 연두색 작은 덩어리들이 둥그렇게 엉킨 채 꿈틀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몸이 길쭉하고 다리가 끊어질 듯 가늘고 긴 사마귀처럼 생긴 여러 무리의 곤충 덩어리가 서로 엉켜서 꿈틀거리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 봤나?'하고 믿을 수 없는 눈앞의 광경에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시력은 1.5, 1.0인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자세히 보았다. 분명히 사마귀 새끼들 같았다. 어머나! 왜 저 곤충 새끼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까. 밖에서 날아온 것은 분명 아닐 텐 데. 그 곤충 알들이 나무 기둥 어느 작은 구멍 속에서 잠을 자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작용에 의해 이제야 알에서 깨어난 걸까? 움직임이 어색한 것으로 보아 밤사이 부화하여 서로 엉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생명이 없어서 5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조용했던 나무. 어찌 된 일일까. 5년이면 1,825일 동안 그 많은 알은 죽지 않고, 깨어날 생각도 없이 어떻게 살아있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5년 간의 긴 동면에서 드디어 깨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혼자 결론내렸다. 

 

    너무 끔찍하고 징그러웠지만 '지금 내가 아니면 누가 치우랴. 지금 당장 치울 사람이 없는데... '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졌다. 만약에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 되어 그 곤충 새끼들이 성체가 되어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그 곤충 무리들을 재빨리 처리해야 했다. 빨리 없애야 된다는 사명감이 나를 용감하게 했다. 누가 보기 전에 재빨리 처리해야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심호흡을 한 후 신문을 바닥에 여러 겹으로 두껍고 넓게 펼쳐서 깔고, 긴 막대기로 가까운 가지 하나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서로 엉켜서 뭉쳐있던 벌레 덩어리들이 신문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낙하로 벌레들은 충격을 받은 듯 신문 위에서 작은 몸부림을 쳤다. 여전히 서로 엉킨 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가지에서 쳐낸 곤충 새끼들이 떨어진 신문을 직원이 재빨리 접어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와 직원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생명을 죽이고 버리는 것이 불교에서는 죄가 된다는 데, 그때 나는 두 눈을 딱! 감고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봄이면 하루살이가 하나둘 생겨 하루살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루살이들은 단내가 나는 곳을 찾아 계속 기웃거린다. 그러면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탁! 친다. 나는 이런 나의 행동이 부득이한 정당 방어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태양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거미들이 더위를 피해 실내나 그늘진 계단 꼭대기며 천장 구석구석에 자신들의 진(거미줄)을 친다. 거미는 그 나뭇가지에도 거미줄을 쳐 놓는다. '너희들이 여름 햇볕이 뜨거워서 그늘로 피서 왔구나!' 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그들이 쳐 놓은 거미줄은 걷어 내게 된다. 누가 보면 '주인과 직원이 얼마나 게으르면 청소를 안 해서 거미줄이 생겼나'하고 생각하게 될 테니 거미줄 제거는 여름철이면 최소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꼭 해야 되는 일과다. 거미줄을 건드리면 거미는 살기 위해서 재빨리 더 높이 도망가 녀석들은 해를 입지 않는다. 거미를 죽일 필요는 없고 거미줄만 걷으면 되는 것이다. 거미들은 잠깐 피해있다가 어느새 또 거미줄을 쳐 놓는다. 나는 거미줄을 걷어내고, 거미들은 내가 없는 사이에 다시 거미줄을 엮는다. 거미가 거미줄을 엮는 모습은 너무나 정교하여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서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너희들과 나. 누구를 탓하랴. 너희는 너희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 분명 하늘은 우리에게 상을 내리실 것이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지구 안에서 생명 연장을 위해 함께 버텨온 인간과 생물로서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오늘도 또 힘겨루기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나무는 내 곁에서 변함없이 푸르름을 뽐내고 서 있다. 

 

    누가 무어라 말하든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 올해도 하루하루 열심히 씩씩하게 살기! 내기 하자. 

    누구의 생명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향 단상]

 

    인간이 추운 겨울에 활동을 줄이는 것처럼 곤충들도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다가 냉기가 풀리는 봄이 시작될 때쯤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나무는 인조 나무지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나무에 기생하는 사마귀와 거미들의 집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안락하게 쉴 집이 필요한 것처럼 곤충들도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그들의 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미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길게 연결하여 줄을 치는데, 거미줄을 길고 넓게 쳐 놔야 벌레가 걸려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거미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긴 거미줄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기도 합니다. 그러면 벌레들이 거미줄에 걸릴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거미줄'과 관련된 속담 '입에 거미줄 친다'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굶주리는 가난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거미줄도 줄은 줄이다' 라는 말은, 거미줄이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거미줄에 걸려 꼼짝 못하는 곤충도 있으니 줄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生口不網'의 뜻은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사람은 죽지 않고 근근이 먹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인 빈곤율이 유럽은 약 15%인데 우리나라는 39%로, 40%에 가깝다고 합니다. 약 3배의 숫자라 깜짝 놀랐습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결혼하여 가족을 뒷바라지 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수명도 늘어나고 늘어난 수명만큼 계속 일하기는 육체적으로 어렵고, 옛날과 달리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부모는 자신의 여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각종 연금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노년의 삶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사람들은 한 끼 정도를 복지관이나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반찬과 도시락 등을 가정으로 배달해주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교회나 절에서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철 한파는 매섭기만 합니다. 연이은 영하의 날씨로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가끔 TV에서 들려오는 연탄 배달 봉사 소식과 소소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어려운 곳을 잘 살펴서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기를.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의 밥이 된다'는 의미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뜻입니다. 부담을 낮추고 여럿이 함께 조금씩 나누어 돕는 '정'이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십시일반'의 열풍이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기를 바랍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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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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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코리안드림문학 편집위원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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