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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색채로 연주하는 음악의 시간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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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 그레이스 리 개인전 《색채의 교향곡: 소리를 담은 시간의 층위》 개최

음악은 들리는 예술이지만, 어떤 음악은 눈으로도 감각된다. 소리의 파동이 색이 되고, 선율의 흐름이 화면 위의 리듬으로 변주될 때, 회화는 더 이상 정지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전포스터 / 갤러리차은영 제공

오는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차은영에서 열리는 은경 그레이스 리(Eunkyung Grace Leigh) 개인전 《색채의 교향곡: 소리를 담은 시간의 층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음악이라는 비가시적 언어를 색채와 물질의 층위로 번역해 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전시 제목처럼 화면 속 색들은 단순한 안료가 아니라, 시간 속에 머물렀던 감정의 잔향이며 음악적 호흡의 흔적이다.

 

은경 그레이스 리의 작업은 음악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다. 바하의 치밀한 구조, 쇼팽의 서정성, 리스트의 극적인 감정 변화는 작가 안에서 하나의 시각적 에너지로 재탄생한다. 음악은 그의 작업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창작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원동력이다. 작가는 들리지 않는 선율의 떨림을 포착해 수만 개의 색점과 물감의 층으로 화면 위에 새겨 넣는다.

Nocturne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작가 특유의 ‘시간의 적층’ 방식이다. 붓 대신 나이프를 사용해 점묘처럼 물감을 쌓아 올리고, 마르기를 기다린 뒤 다시 색을 덧입히는 반복의 과정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수행에 가까운 행위다. 화면 위에 축적된 물감의 입자들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의 밀도를 품으며 빛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의 장을 형성한다.

Arioso

전시장에는 대표 연작인 《아리오소(Arioso)》, 《쇼팽 시리즈》, 《미지의 세계로(Into the Unknown World)》, 그리고 새롭게 공개되는 《콘솔레이션(Consolation)》 시리즈가 소개된다. 작품 속 여성의 형상과 나무, 빛과 색의 흐름은 구체적 재현을 넘어 음악의 감정이 물질로 전환된 심리적 풍경처럼 다가온다.

 

《Arioso》에서는 다채로운 색의 흐름이 한 인물의 내면을 감싸며 선율처럼 유연하게 확장된다. 머리카락처럼 흘러가는 색띠들은 마치 음악의 리듬이 공간을 유영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Nocturne》 연작은 어두운 화면 위에서 반짝이는 색점들이 밤의 정적 속 울림처럼 퍼져나가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만든다.

Into the Unknown World

또 다른 대표작 《Into the Unknown World》에서는 붉은 문 사이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나무가 등장한다. 낯선 세계로 향하는 통로처럼 열린 문은 현실과 내면, 시간과 기억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며 관람객을 새로운 감각의 차원으로 이끈다. 작품 전체를 덮고 있는 촘촘한 색점은 음악의 화성이 쌓여가는 과정처럼 진동하며 화면에 깊은 밀도를 부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함께 영상 작업도 선보인다. 캔버스 속 색채 에너지가 움직이는 영상은 정지된 회화에 시간성을 더하며, 관람객이 ‘소리가 시각으로 연주되는 순간’을 직접 체험하도록 구성된다.

Consolation 4-2 Green Movement

은경 그레이스 리 작가는 “형태는 본질을 담는 그릇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색의 밀도와 에너지의 흐름”이라며 “수많은 기다림과 반복 속에서 음악과 내면이 교감하며 하나의 화면으로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전시를 넘어, 음악과 색채, 시간과 감정이 서로를 번역하며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경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머무는 순간마다 각자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서로 다른 선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용한 울림은 전시장을 나선 이후에도 오래 마음속에 잔향처럼 남게 될 것이다.

 

전시 개요

  • 전시명 : 은경 그레이스 리 개인전 《색채의 교향곡: 소리를 담은 시간의 층위》
  • 전시기간 : 2026년 5월 20일(수) ~ 5월 26일(화)
  • 전시장소 : 갤러리차은영
  • 관람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6시 30분
  • 문의 : 010-2517-7705

 

작가 소개

은경 그레이스 리는 런던, 파리, 시카고, 방콕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음악적 감성을 색채와 물질의 에너지로 치환하는 독창적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2025년 아트스페이스 H 개인전에 이어 2026년 갤러리차은영 개인전을 개최하며, 《K-Woman in Paris》, 《이제 세계로 展》, 《음악을 그리다》 등 다양한 국제 교류전과 기획전에 참여해 왔다. 또한 중앙회화대전, 신사임당미술대전, 강원미술대전,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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