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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송희복의 "슬픈 꼭두각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송희복의 "슬픈 꼭두각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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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94] 

슬픈 꼭두각시

 

송희복

 

구십 년대 초였는지 모른다.

나는 결혼할 상대가 정해지기도 전에

딸아이의 이름을 미리 지어 놓았다.

연꽃 연 자에 구슬 옥자인 연옥(蓮玉)이었다.

연꽃처럼 예쁘게, 구슬처럼 맑고 여물게 살아라,

뜻도 뜻이지만 여녹이라는 발음이 무척 좋았었다.

이런 생각이 어느 날 무심코 떠올랐다.

내가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연옥이란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한다.

그로부터 아마 한 달 정도 지났나 보다.

꿈속의 나는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 옆자리에 대학교 삼사 학년쯤 돼 보이는

처녀아이가 앉아 있었다. 얼굴은 화장기가

없이 곱다랗고, 머리카락은 기름하게 묶여졌고,

옷은 흰 원피스로 잘 차려 입었다. 내가 몰래 흘깃

곁눈질하는 순간에, 처녀아이는 내 손등을 툭 치면서

두 입술을 힘차게 붙였다 떼며 압빠, 하고 불렀다.

꿈속의 얘기를 아내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더니,

, 당신 연옥이를 만났네, 하며

아내는 나에게 우스갯소릴 했다.

하기야 그 무렵에 연옥이가 태어났다면 지금쯤

스물두어 살이 되었을 나이다. 아무래도 내게

연옥이는 태어나지 아니한 딸을 위한

주인 없는 이름이다. 내 마음속에

숨어 있는 슬픈 꼭두각시다.

 

ㅡ『경주의 가을을 걸으면』(작가세계, 2015) 

슬픈 꼭두가시_송희복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

 

  송희복은 국문학자 겸 문학평론가 겸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이다.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은 총각 시절인 90년대 초, 훗날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의 이름을 연옥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연꽃 연자에 구슬 옥자인 연옥은 여녹이라는 발음도 좋아 마음에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자 이름이 촌스럽다고 퉁을 놓았나 보다. 이야기를 나누고 한 달 후에 송 시인은 꿈을 꾼다. 태어나지도 않은 딸을 꿈속에서 만났던 것이며, 그 딸이 압빠하고 불렀다고 하니 꿈에서 깨어나 얼마나 허전하고 아쉬웠을까. 마침 딸의 이름을 지어놓은 때로부터 세어보니 딸이 그 무렵에 태어났더라면 스물 두어 살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더더욱 서글픈 감회에 사로잡히게 된다. 연옥이는 태어나지 아니한 딸을 위한/주인 없는 이름이며 숨어 있는 슬픈 꼭두각시.

 

  이 시를 읽으며 두 작품을 생각했다. 하나는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선』에 나오는 「꿈속의 어린이」이며, 또 하나는 서정주의 「부활」이라는 시다. 찰스 램(17751834)의 여동생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동생은 발작 중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크게 다치게 했지만 병증으로 인정받아 구속되지 않았다. 램은 이 누이를 평생 돌보면서 독신으로 살아갔다. 혼담이 있기도 했지만 가족 중 이런 여동생이 있다는 것은 그의 혈통에 유전적인 병증이나 결함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성사되지 않았다. 어느 날 램은 누이가 병을 앓지 않고, 자신이 결혼하여 아이들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되는 수필을 썼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상상의 날개를 펴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대체 어떤 분이었을까,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린것들이 어느 날 저녁, 그들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필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내 곁에 모여 앉은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수필은 부제가 하나의 환상이다. 나의 어린것들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 즉 환상 속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송 시인도 19세기 초 영국의 찰스 램처럼 환상(혹은 꿈속)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딸을 등장시켜 시를 써본 것인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짠한 것일까. 송 시인은 슬하에 자녀가 없다. 그래서 에 대한 갈망이나 그리움이 자녀를 둔 나 같은 사람보다 몇 배나 큰 것이리라. 꿈속에서 딸 연옥을 만난 이후 그 아이가 내 마음속에/숨어 있는 슬픈 꼭두각시임을 깨닫고 이 시를 썼던 것이 아닐까.

 

  서정주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을 다룬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사별한 이웃집 소녀의 부활을 다뤘다. 물론 마음속에서의 부활이니 신체의 부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인은 어린 날, 친구(소꿉친구였는지 짝사랑한 이웃집 소녀였는지 시에서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를 잃었는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고 했으며,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라고 반복해 말했을까. 세월이 한참 흘러갔어도 그녀에 대한 영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던 터에 종로 네거리에서 몇 명의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환한 햇볕을 받으며 조잘대며 오는 그 소녀들을 보고 시인은 환상에 사로잡혀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아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하고 부르짖는다.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면 이와 같이 환상을 보게 되나 보다.

  

「슬픈 꼭두각시」도 인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산물이다. 특히 가족과의 이별이나 사별은 단장의 아픔이라고 할 만큼 큰 것인데, 애당초 태어나지 않은 딸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는 경우를 보여주었다. 꿈속에서 본 딸과 얼마나 애틋한 부녀지정을 나눴으면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여운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을까. 지상에 존재한 적은 없지만 진주교대 학생들을 보면서 내 딸 같은 아이들’, ‘내가 그때 결혼을 했더라면 내가 두었을 딸은 저 나이가 되어 있겠지하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리라. 서정주의 시나 송희복의 시나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어서 독자의 마음을 한층 안타깝게 한다.

 

  꼭두각시는 원래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여러 모양의 이상야릇한 탈을 씌운 인형이거나 남의 조종에 따라 주체성 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시에서는 조금 뜻이 다른 듯하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슬픈 꼭두각시는 바로 꿈속에서 만난 딸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송희복 교수는 제자들을 딸처럼 귀하게 생각하며 성심성의껏 가르쳤을 것이다.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 “내 마음속에/숨어 있는 슬픈 꼭두각시를 생각하면서.

 

  [송희복 시인]

 

  진주교대 명예교수. 조선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영화평론), 불교신문 신춘문예(소설) 당선. 박인환상(연구부문), 청마문학연구상, 강희근문학상 수상. 시집 『기모노 여인과 캔커피』 『저물녘에 기우는 먼빛』 『경주의 가을을 걸으면』『첩첩의 겨울 산』 『스무 편의 서정시와 한 편의 서사시』를 출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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