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아카데미] 김강호의 “책등”
[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 ] 월요일에 찾아오는 시조 공부
책등
김강호
내소사 꽃살 무늬 온몸에 둘러 입고
변산반도 파도 소리 큰 귀에 담으면서
긴 날개 접은 당신이
우울하게 서 있습니다
상처 깊은 인생 내력 깊은 몸에 가둔 채
행여 눈물 보일까 봐 등 돌리고 있지만
처마 끝 그믐 달빛도
당신 마음 읽습니다
두견새 울음소리 소복하게 쌓일 때
견뎌온 슬픔 둑이 터질 것만 같아서
당신을 소리쳐 부르자
야윈 등이 무너집니다

위 시조 ‘책등’은 연시조다. 평시조 3수首를 연이어 썼으니 3수가 합쳐져서 연시조가 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연이 길어지는 것이고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단호하게 압축해서 버릴 것 다 버리고 한 수로 빚게 되면 평시조(단시조)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책등을 보면서 중의적인 창작기법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중의법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깊이 있는 시조를 써야되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다. 시의 깊은 맛을 우려내기 위해서는 깊은 울림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순간의 영감으로 얻는 작품도 있겠지만 그런 시에서 얻는 작품은 깊은 맛이 적다고 보아야 한다. 위 책등이란 작품 역시 중의법을 활용한 작품이다. 한 편의 작품에서 두 가지 뜻 덩어리의 의미가 서로 상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통합된 한 덩어리의 작품이 된다. 예를 들자면, 검정 흙 한 덩어리와 하얀 흙 한 덩어리를 합쳐 찰진 한 덩어리 흙으로 빚는 것이다.
책등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아버지’시집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책등이 그냥 책의 등으로만 보였다면 깊은 맛을 우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책등을 ‘아버지’의 야윈 등으로 보았으며 책의 날개는 아버지의 청춘으로 보았다. 등 뒤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듯 보이지만 중의적인 표현을 다루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 넓게는 철학적 사유의 저장고에서 많은 것들을 꺼내와야 할 것이다. 언어가 지니고 있는 물성을 잘 활용할 때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질감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위 시조는 책등을 통하여 아버지의 일대기를 작품 속에 이입시켰고 내소사 꽃살 무늬와 변산반도 파도 소리, 처마와 두견새 울음소리를 소재로 끌어왔다. 작품을 완성한 뒤에 기대감은 크지 않다. 모두가 공감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
다음 주는 한국의 빛나는 시조로 찾아올 예정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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