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몽돌 / 홍영수
[ 홍영수의 세상보기 6]
몽돌 / 홍영수
햇살에 걸린 은빛 파도로
돌무늬에 시간의 눈금을 새기면서
얼마나 구도의 길을 걸었기에
손금 지워진 어부처럼
지문마저 지워져 반질거릴까.
낮게 임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깻돌,콩돌,몽돌이 되어
알몸 맨살 버무리며
철썩이는 파도의 물무늬로 미끈거릴까.
평생 누워 참선하면서
바닷소리 공양에 귀 기울이며
얼마나 잘 익은 득음을 했기에
수평선 너머 태풍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무한 고통의 탯줄을 끊은
저 작은 생명력, 그 앞에선
파도마저 차마 소리 죽여 왔다 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잘 마모되어 간다는 것.
얼마나 더 마모되어야
내 안에 몽돌 하나 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섬, 보길도, 눈앞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 이 섬에서 태어나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어부들의 사계절 모습을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한 어부사시사의 40수를 상기하면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꽃을 피워냈던 고산의 문학성을 반추하며 어부의 노 젓는 소리를 읊조려 본다. “지국총(至匊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於思臥) ”이같이 시조 문학의 주옥편이라 할 수 있는 <어부사시사>를 창작했던 곳이다.
그의 문학 작품에 흐르는 자연과의 친화는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 속에 동화되고자 하는 고산의 마음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조선시대 문학이 대체로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자연을 통해 교훈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등, 강호가도를 노래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기는 했다.
완도군에 속한 보길도 예송리에는 유명한 몽돌 해수욕장이 있다. 물론 고산도 몽돌이 펼쳐진 앞바다에서 고깃배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수없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해수욕장엔 몽돌들이 온통 천년의 댕돌이 되어 누워있고, 일렁이는 파도의 화살에 과녁이 되고, 멱을 감고 있다. 그러면서 긴긴 세월 닳고 닳아가며 지문을 지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몽돌은 견뎌온 세월만큼의 경험으로 먼 곳에서 다가오는 태풍의 눈짓을 어부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다. 또한, 거친 파도와 폭풍우에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품에 안겨 그들의 숨결로 호흡했을, 그래서 맨살 맨몸이 되어도 부끄럼 없이 지금도 그 몸짓, 그 숨결로 참선하는 해변에 道 한 알 되어 누워있다. 나도 함께 누우면 한 알의 道가 되어 젖어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