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2] 김정숙의 "아날로그 할머니"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2] 김정숙의 "아날로그 할머니"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시조 해설]

아날로그 할머니

 

김정숙

 

컴퓨터 이메일 대신 연필로 쓰는 편지

연필, 지우개, 공책, 우체통도 없어질까

속으론 우편집배원 삼촌 걱정 앞서요

 

숙제는 첨부파일 성적표는 이메일로

로봇이 선생님 되면 어떻게 가르칠까

속으론 학교 선생인 고모 걱정 더 커요

 

친구가 전자신문 전자책 사랑하자

“책 냉기는 맛 읍꼬 어지러버 우째 읽노”

속으론 서점 주인인 아빠 위해 기도하셔요

 

—《미주시조》(2024년 여름호)

 

아날로그 할머니 _ 김정숙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동시조를 소개합니다

 

  이 시조의 화자는 중학생쯤 되는 소녀다. 할머니의 친구 되는 분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해 요즈음 전자신문과 전자책을 보고 있다면서 자랑하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책 냉기는 맛 읍꼬 어지러버 우째 읽노. (책 넘기는 맛 없고 어지러워 어떻게 읽니.)”

 

  할머니가 따로 말하진 않지만 서점 주인인 내 아빠, 즉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지 않고 전자책을 보게 되면 서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할머니가 고민하는 이유를 손녀가 잘 알고 있다.

 

  할머니의 고민은 이것만이 아니다. 우편집배원인 내 삼촌, 즉 당신의 아들 중 한 명은 바로 그 직업을 가졌는데 요즈음 보니까 일이 많이 줄었다. 편지 배달, 소포 배달이 주된 업무였는데 사람들이 편지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메일도 있지만 카톡으로 의사전달을 할 수 있으니 편지 쓸 일이 없어졌다. 예전 같으면 우체국에 가서 소포 부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을 몇 번 누르면 쿠팡이 집의 문 앞에다 물건을 배달해 놓는다. 연필과 지우개, 공책이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곧 사라질 것이다. 우체통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거리 곳곳에 아직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 우표 붙인 편지를 넣는 광경이 사라졌으니 완전히 무용지물이다.  

 

  화자의 고모가 학교 선생인데 요즘 보니까 숙제는 첨부파일로 받고 있고 성적표는 학부형의 이메일로 보내고 있다. 거의 모든 문서 작성 시스템이 전산화되고 있으니 업무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업무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해서 각 학교 교실에 가서 아이들에게 놀라고 할 수도 없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참 얼마나 곤란한 일인가. 딸에 대한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할머니를 근심하여 손녀가 빌고 있는 형국이다. 동시는 아주 유머러스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시인은 사라질 직업군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있다.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직업의 대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로봇이 선생님이 되면 도대체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고 계신 할머니다. 아날로그 할머니 만세!

 

  [김정숙 시인]

 

《한국아동문학》에 동시가, 《한국아동문예》에 동시조가 당선되면서 등단. 동시조집 『이민학교 일학년』 출간. 미주아동문학가협회, 미주시조시인협회, 달라스 한인문학회 회원.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김정숙시인#시조해설#아날로그할머니#코리아아트뉴스시조해설#좋은시조읽기#시조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