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01] 이경철의 "강화 동검도 채플"

강화 동검도 채플

이경철

사방팔방

갯벌이다

바다 쓸려간 뻘밭 숭숭

구멍 뚫려 가쁜 숨 내쉰다

질척이며 고꾸라지며 끌고 온

십자가 맞춤한 언덕

산사나무 가시 면류관 못 박혀

빛살이 된 동검도 채플

일곱 평 남짓 뻥 뚫린 성소

갈밭 갯벌 너머 바다 수평선 솟아오른 마니산과 하늘

경계를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 그대로

창에 들어와 빛이 된다

붓질 한 번

갈가리 터져오는 빛살의 태초

빛과 그림자 함께

색색 숨결로 무늬져 오는 스테인드글라스

질척이는 갯벌 푹푹 빠지는

엉망진창 죄 많은 이내 삶 어떻게

은총의 빅뱅Big Bang, 빛살 되느냐 검문하며

나를 발가벗기는 동검도 채플.

—『환하다』(도서출판 서정시학, 2025) 

  [해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성당이 있는 곳

  강화도 인근 작은 섬 동검도 언덕에는 국내에서 가장 작은 성당으로 알려진 7평 남짓한 ‘동검도 채플’이 있다. 이곳에 네 번 가보았다. 시의 공간적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경철 시인이 아주 멋지게 형상화하였다. 정말 바다 뻘밭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마니산이 보인다. 시인은 이 성당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골고타 언덕 위의 십자가가 연상되었나 보다. “산사나무 가시 면류관 못 박혀/ 빛살이 된 동검도 채플”이라고 했다. 이곳은 사계절의 풍경도 확연히 다르지만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풍경이 아주 다르다.

  이곳에 가면 사제이자 스테인드글라스 화가, 시인이자 수필가인 조광호 시몬 신부님이 계신다. 신부님은 해가 뜨고 지고, 하늘과 밀물 썰물이 드나드는 갯벌을 보며 빛과 색채, 언어로 보이지 않는 말씀을 받아 적어 왔다. 이것을 ‘푸른 말씀(Blue Logos)’이라 부른다.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블루 로고스』와 그림 시집 『흐름 위에서』는 신부님의 내면을 관통해 흐르는, 이런 ‘푸른 영성’의 두 얼굴을 펼쳐 보인다. 한 권은 사유의 언어로, 한 권은 시와 그림의 리듬으로, 푸른 말씀의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쌍둥이 책이다(가톨릭신문 이주연 기자).

  시인은 이 청정한 공간에 와서 심히 자책한다. “빛과 그림자 함께/ 색색 숨결로 무늬져 오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는 “질척이는 갯벌 푹푹 빠지는/ 엉망진창 죄 많은 이내 삶 어떻게/ 은총의 빅뱅, 빛살 되느냐 검문하며/ 나를 발가벗기는 동검도 채플”이라고 하니 순수와 오염, 은총과 죄업, 신앙과 무심이 대조를 이룬다. 이곳에 가면 아마도 다들 이런 것을 느낄 것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면서 가슴을 치고 싶을 것이다. 이경철 시인은 문화부 기자일 때 최고의 문학 기사를 썼는데 근년에는 최고의 시조평을 쓰고 있다.

  [이경철 시인]

  1955년 전남 담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문화전문기자 역임. 문예중앙, 랜덤하우스, 솔출판사 주간 역임. 2010년 《시와시학》에 김남조 시인 추천을 받아 시로 등단. 동국대, 경기대, 숭의여대, 서울디지털대 겸임교수 역임. 1990년부터 다수의 현장 비평적인 평론을 발표해 『나는 치우천황이다』『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21세기 시조 창작과 비평의 현장』『미당 서정주 평전』『현대시에 나타난 불교』『박찬 평전』『허무의 꽃』 등과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를 펴냈다. 현대불교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인산시조비평상, 동국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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