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시 해설] 이명애의 "구들 농사"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이명애의 "구들 농사"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68] 

구들 농사

 

이명애

 

황해남도 봉천군엔 여태

에디슨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감나무마을이 있다

 

고난의 행군이 비껴간 외진 곳

이 마을은 625도 모른다.

이승만의 고향이라

폭탄 한 방 안 떨어졌다는 전언이다

 

아늑한 골짜기

가을이면 온 가족이 달라붙어

뱀새워 감을 깎는다

나무 꼬챙이에 끼워 곶감을 만든다

 

복 받은 감나무마을에 평온이 깃든다

긴긴 겨울 밤 등잔 기름 아까워

해 떨어지자 잠 청한다

 

밝은 줄 모르는 새벽을 탓하며

구들 농사만 짓는다

집마다 아이들만 수두룩

 

―『연장전』(등재지기, 2020)

 

구들농사/이명애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초저녁부터 뭘 하는 거지

 

  이 시를 쓴 이명애 씨는 탈북인이다. 요즘에는 북한이탈주민이란 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우리 귀에는 탈북인이 더 익숙하다. 1965년 출생으로 한국에 온 것이 2006년이므로 남쪽 나라에서 산 지도 20년이 되었다.

 

  북한에는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가는 곳이 있나 보다.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펼쳐지던 1970년대에 웬만한 오지가 아니고선 전기가 들어가 호롱불이 자취를 감췄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은가? 북한을 떠나온 지 20년이 더 되었으므로 황해남도 봉천군이란 곳의 전기 사정이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의 봉천군이 일제강점기에는 금천군과 평산군이었으니 이 시의 내용이 맞다. 625전쟁 당시 미군기가 북한을 공습할 때 평산군은 뺐다고 전해 내려오는 소문이 낭설은 아닌 것 같다. 평산군이 1952년에 평천군으로, 1990년에 봉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1996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일어난 북한 최악의 식량난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게 비껴갔다고 하니 이 지역의 농산물 수확이 그런대로 괜찮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보다. 이 시기 아사자의 수를 유엔은 인구 센서스를 바탕으로는 33만여 명으로, 미국 통계청에서는 5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추산했었다. 봉천군에는 감이 많이 나 가을에는 곶감 만드는 것이 주민들의 주요 일과인 모양이다.

 

  그런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주민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고, 그러다 보니 구들 농사를 열심히 짓는 바람에 여성들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 시의 마지막 연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거나 전기가 안 들어갈 정도로 낙후된 곳이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지 않고 이명애 시인은 농담을 한마디 던지며 시를 마무리한다. 북한의 식량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시가 시집에 많이 나오는데 이 시는 색다르게, 해학적으로 끝난다. 대한민국은 만경강 최상류에 있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운용마을 일곱 가구에 전기가 안 들어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곳에 아이들이 많은지는 모르겠다.

 

  [이명애 시인]

 

  2016년에 숭실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싶어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2020년에 첫 시집 『연장전』을, 2022년에 두 번째 시집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를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구들농사#이명애시인#탈북인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