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64] 김강호의 “마른 꽃이 고운 날”
마른 꽃이 고운 날
김강호
요양원 유리창 쪽 웃고 있는 마른 꽃
잠간 새 앙증맞고 아름답게 보여서
눈시울 그렁해지며 나도 따라 웃는다
저, 마른 꽃 본향은 산골 마을 너덜겅
능선보다 긴 슬픔 조심스레 개키면서
뒤엉긴 삶의 매듭을 풀었다 되묶는다
인생이란 바구니에서 기억들을 꺼내어
허공에 흩고 있는 아흔 살의 마른 꽃
오늘은 혈색이 돌아 생화보다 고왔다.

「마른 꽃이 고운 날」은 어느 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늙음과 삶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성찰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젊음과 생명력,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반면 ‘마른 꽃’은 시들고 쇠락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마른 꽃’은 단순히 늙은 육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긴 세월을 견디며 삶의 풍상을 통과해 온 아흔 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마른 꽃’은 외형을 가리키면서도 시간과 인생 자체를 의미한다.
첫 수의 「요양원 유리창 쪽 웃고 있는 마른 꽃」에서 ‘유리창’은 안과 밖,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경계의 상징이다. 그 창가에 앉은 노인은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머니를 보는 순간 「앙증맞고 아름답게 보여서」라고 말했다. 여기서 ‘앙증맞다’는 표현은 노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이는 늙음 속에서도 발견되는 순수함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다. 결국 「눈시울 그렁해지며 나도 따라 웃는다」고 한 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견뎌낸 존재에 대한 경외와 공감의 눈물이다.
둘째 수에서「저, 마른 꽃 본향은 산골 마을 너덜겅」이라는 구절은 매우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너덜겅’은 돌무더기가 널려 있는 척박한 땅이다. 이는 평생토록 살아온 고단한 삶의 암시다. 특히「능선보다 긴 슬픔」이라는 표현은 인생과 비유한 구절이다. 산의 능선보다 더 길다는 슬픔은 한 인간이 평생 짊어지고 온 고통의 무게를 형상화했다. 또한「삶의 매듭을 풀었다 되묶는다」는 표현은 실제 매듭이 아니라 인생의 갈등과 후회, 그리움의 뜻이다. 기억 속에서 수없이 과거를 되짚으며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수「인생이란 바구니」에서 인생을 바구니에 비유함으로써 살아온 세월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저장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억들을 꺼내어 허공에 흩고 있는」모습은 회상과 추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이다. 특히 허공은 현실과 과거가 만나는 정신적 공간으로 놓았다.
마지막 구절「오늘은 혈색이 돌아 생화보다 고왔다」는 이 작품의 주제를 집약했다. 겉으로는 시든 꽃이지만, 긴 세월의 사랑과 슬픔과 인내를 품은 존재는 오히려 막 피어난 생화보다 더 아름답다는 뜻이다. 여기서 ‘생화’는 젊음과 육체적 아름다움을 말하고, ‘마른 꽃’은 인생의 깊이와 정신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따라서 이 대조는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삶의 품격이 더 빛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결국 「마른 꽃이 고운 날」은 늙음을 쇠퇴가 아닌 완성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시든 꽃처럼 보이는 늙은 얼굴에서 세월이 빚어낸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젊은 꽃도 가질 수 없는 인생의 향기를 노래한 것이다. 특히 ‘마른 꽃’을 통해 노년과 꽃, 삶과 기억을 겹쳐 놓음으로써 인간 존재의 깊은 존엄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