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4】좌고우면
좌고우면
김선호
난데없는 갈림길이 시험에 들게 하는디
태극기 날려봤나, 촛불 한번 들어봤간? 양당 간에 뭣이냐고 윽박지르니 워쩌겄어? 아 글씨, 아 글씨 하며 말끝 흐리던 광장에서
국회로 가야 하나 당사를 찾아갈까 찬성표를 던질까 암만해도 반대표지 그도 저도 다 관두고 슬그머니 기권표를? 요리조리 가늠하다 이쪽저쪽 다 문 닫고 줄커녕 물타기마저 머쓱하게 놓치던 날, 왜 하필 그때를 골라 김장 판을 벌였겄다
여름내 요상한 날씨로 배추가 늦된 탓에 한 달여나 늦어져서 추위마저 보태는디 무채 쪽파 생강 마늘 갖은양념 버무릴까 김치통이나 슬슬 옮기는 뒷손질이 좀 쉬울까 슬금슬금 눈치 보며 잔머리가 핑핑 돌 때 뭐하노! 퍼뜩 온나, 주머니엔 거 뭐꼬? 앙칼진 성화에 놀라 엉겁결에 꺼내는디
왼쪽엔 고무장갑이요, 오른쪽은 면장갑이더랑께

조조(曹操) 아들 조식(曹植)이 공신인 오질(吳質)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대 위용은 유방의 명신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흉노를 무찌른 명장 위청(衛靑)이나 곽거병(霍去病)도 필적할 수 없소. 왼쪽을 돌아보고(左顧) 오른쪽을 살펴봐도(右眄) 그대와 견줄만한 사람이 없는 듯하오.’ 자신만만함을 높이 산 이 찬사 <좌고우면>은 훗날 푸대접받는다.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는 비겁함의 상징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좌고우면은 장수 사주를 타고났다. 시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로 기능한다. 왼쪽에는 이미 굳어 있고(左固) 오른쪽은 깊은 잠에 빠져(右眠) 요지부동이다. 어느 편에 설까, 유불리를 가늠하는 경선판에도 좌고우면이 오락가락한다.
눈치를 살피더라도, 설령 좌고우면하더라도 스케일은 좀 커야겠다.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간을 본다든가, 정치 생명줄 유불리 탐색 정도는 해야겠다. 고작 양념할까 뒷손질할까를 고민하다니! 오오, 틀림없는 졸장부로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