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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건축의 기억을 수묵으로 불러내다…이여운 개인전 《흑(黑)의 초상》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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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근대건축과 사라진 장소의 기억을 수묵의 언어로 되짚는 이여운 작가의 개인전

 《흑(黑)의 초상 Portraits in Black》이 오는 9월 1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오프닝은 9월 14일 오후 5시에 진행되며, 생황 연주자 김효영과 클래식 기타리스트 황민웅의 공연도 함께 마련된다.

이여운 개인전 《흑(黑)의 초상 Portraits in Black》 포스터. 
전시는 9월 1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여운은 2002년 첫 개인전 이후 20여 년 동안 도시의 건축물을 주요 소재로 작업해왔다. 자연 풍경 대신 건축의 정면, 즉 파사드에 주목하며 동양화의 세필과 먹으로 건축의 외형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린다. 수없이 겹쳐진 선은 건물의 구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표면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라진 장소의 흔적을 화면 위에 남긴다.

이여운, 〈기념비-구세군중앙회관 monument-Salvation Army Central Hall〉, 캔버스천에 수묵, 81×162cm, 2026.

이번 전시 제목인 《흑(黑)의 초상》은 작가 작업의 핵심 재료인 ‘먹’과 ‘초상’의 개념을 결합한 것이다. 이여운은 건축물의 파사드를 하나의 얼굴처럼 바라본다. 중첩된 먹선은 건축의 윤곽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짙은 검정은 대상을 어둠 속에 감추는 색이면서도 오래된 기억을 다시 화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색으로 작용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다뤄온 대상은 서울의 근대건축물과 이미 사라졌거나 변화된 장소들이다. 물리적 건축은 없어질 수 있지만 그 형태와 이미지는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이여운은 이런 ‘부재하는 건축’을 수묵으로 다시 호출하며, 건축이 사라진 이후에도 잔존하는 시간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이여운, 〈기념비-용산역 monument-Yongsan Station〉, 캔버스천에 수묵, 97×145.5cm, 2018.
이여운, 〈기념비-서울시청 monument-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캔버스천에 수묵, 97×162cm, 2018.
이여운, 〈기념비-경성우편국 monument-Keijo Post Office〉, 캔버스천에 수묵, 130×192cm, 2022.

출품작 가운데는 용산역, 서울시청, 경성우편국, 한국은행, 광화문, 경복궁, 부산역, 운현궁 양관, 신세계백화점 등 근현대사의 시간과 도시의 변화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건물의 외형을 정밀하게 재현하면서도 단순한 건축 드로잉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에서 겹쳐지는 듯한 시각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여운, 〈기념비-한국은행3 monument-The Bank Of Korea 3〉, 캔버스천에 수묵, 130×192cm, 2018.
이여운, 〈기념비-광화문 monument-Gwanghwamun〉, 캔버스천에 수묵, 81×162cm, 2018.
이여운, 〈기념비-경복궁 monument-Gyeongbokgung Palace〉, 캔버스천에 수묵, 81×162cm, 2018.

특히 먹선이 반복적으로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건물의 외곽선은 완성된 건축물의 모습과 설계도, 기억 속 이미지가 동시에 포개진 듯한 인상을 준다. 일부 작품에서는 전통건축과 근대 서양식 건축, 현대 도시의 구조가 한 화면 안에서 중첩되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복합적인 시간성을 드러낸다.

 

정동1928, 작품과 공간이 만나는 전시

 

이번 전시가 열리는 정동1928 아트센터는 1928년 완공된 구세군중앙회관을 재생한 문화공간이다. 과거 사관 양성과 선교, 사회사업의 중심지였던 이 건물은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품어온 근대건축의 증언자이자 정동의 도시 기억을 간직한 장소다.

이여운, 〈기념비-부산역1 monument-Busan Station1〉, 캔버스천에 수묵, 112×162cm, 2018.
이여운, 〈기념비-운현궁 양관 monument-Western House of Unhyeongung〉, 캔버스천에 수묵, 97×130cm, 2018.
이여운, 〈기념비-신세계백화점 monument-Shinsegae Department Store〉, 캔버스천에 수묵, 81×162cm, 2018.

이 같은 장소성은 이여운의 작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작가가 그려온 대상 역시 도시의 건축과 그 안에 축적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건축공간 안에서 근대건축의 파사드를 수묵으로 그린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서 실제 공간과 회화 속 이미지가 서로를 비추는 구조가 형성된다.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건축은 사라져도, 장소의 기억은 어디에 남는가.”

 

수묵에서 디지털 영상으로…건축 이미지의 확장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영상작업 〈Digital Canvas Virtual Evolution of Facades〉도 함께 선보인다.

 

이 작품은 이여운이 20여 년간 수묵으로 그려온 건축 파사드 이미지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한 뒤 영상 알고리즘을 이용해 재배열하고 중첩, 변형하는 단채널 영상작업이다. 서울역과 한국은행, 중앙청, 경성우편국, 대한의원 등 서울의 근대건축물은 물론 한옥과 유럽의 고딕 성당 파사드 등이 영상의 원천 이미지로 활용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건축물들은 영상 안에서 끊임없이 결합되고 변형된다. 정적인 수묵화에 축적됐던 시간의 흔적이 움직이는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이여운의 작업은 전통회화에서 디지털 미디어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는 수묵의 조형언어를 동시대 미디어 환경으로 옮기는 시도이자, 건축의 외벽 자체를 하나의 ‘디지털 캔버스’로 바라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가는 회화와 영상 사이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건축과 현재의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생황과 클래식 기타가 더하는 ‘시간과 기억’

 

9월 14일 오후 5시 열리는 전시 개막 행사에는 생황 연주자 김효영과 클래식 기타리스트 황민웅이 참여한다.

 

수묵 특유의 고요한 화면과 1928년에 지어진 역사적 공간, 생황과 클래식 기타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전시가 다루는 ‘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시각을 넘어 청각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이여운 작가. 사진=정동1928 아트센터

이여운은 서울예술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와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25년 미국 뉴저지 ARTMORA ART RESIDENCY에 참여했으며, 2021년 단원미술제 선정작가와 호반문화재단 H아트랩 입주작가, 2019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25년 미국 뉴저지 ARTMORA Gallery의 《Portraits of Monumental Architecture》, 2024년 아트스페이스J_CUBE 1의 《Tales of the Unforgettable》 등이 있으며, 2026년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 2025년 소마미술관 《더 드로잉: 나에게 드로잉이란》, 2023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박물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양주군립미술관, 국립해양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 개요

  • 전시명: 《흑(黑)의 초상 Portraits in Black》
  • 작가: 이여운(Yuwoon Lee)
  • 기간: 2026년 9월 14일~10월 12일
  • 오프닝: 2026년 9월 14일 오후 5시
  • 장소: 정동1928 아트센터
  • 주소: 서울 중구 정동 1-23, 구세군중앙회관
  • 오프닝 공연: 김효영(생황), 황민웅(클래식 기타)
  • 문의: 02-722-1928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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