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김지하의 "서울길'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7]
서울길
김지하
간다
울지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 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갈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창작과비평사, 1982)

[해설]
대통령 박정희와 시인 김지하의 불화
5월 16일이다. 1961년의 5월 16일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날이다. 64년 전 오늘, 박정희 장군은 부하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감행해 성공한다. 경제개발을 통해 정권 창출의 명분을 얻고자 했지만 개발에 따르는 비용이 문제였다. 일본으로부터 유상과 무상으로 원조금을 받기로 했으니 비밀리에 행해진 한일회담의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의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이런 때 김지하가 분연히 일어났다. 1964년의 한일회담 성사는 6ㆍ3사태를 가져왔다. 데모를 주도했지만 5년 세월 내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쓴 시가 「오적」이다. 이 시는 결과적으로 김지하가 8년간 옥살이를 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길」은 「오적」 발표 이전, 농촌 여성의 서울 이주를 다룬 시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경기도 인구과밀 현상이 여전한데 이농(離農)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이른바 ‘산업화’와 ‘경제개발’의 시대로서 이농현상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이들은 도시빈민이 되어 이른바 ‘산동네’나 ‘쪽방촌’에 모여 살게 된다. 그 무렵에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으로 광주대단지사건을 들 수 있다.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신개발지역에 수도시설도 안 갖춘 채로 간이천막 수백 개를 쳐놓고 산동네 주민 수천 명을 강제이주시킨 것에 대해 분노한 주민들이 1971년 8월 10일 하루 동안 공권력을 해체시킨 채 도시를 점거한 적이 있었다.
서울 영등포에 구로공단도 생겨났고 버스 차장, 다방 여급, 술집 종업원 등 여성 인력이 필요하게 되자 돈을 벌겠다는 꿈을 품고 도시로 떠나는 여성이 속출하게 된다. 도시에 나와 살게 된 여성이 전락하여 사창가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그 시대에 김지하는 여성 화자를 등장시켜 당당하게 서울로 몸 팔러 간다고 외치게 한다. 그런데 이 시에는 비장미가 내장되어 있다. ‘댕기 풀’, ‘분꽃’과 ‘밀 냄새’로 상징되는 농촌공동체사회를 버리고 “모질고 모진 세상”에 나와 살게 됨으로써 삶의 조건이 향상되기는커녕 마음이 황폐해지고 몸은 찌드는 여성이 양산되는 현실의 비극성을 시인은 살펴보았던 것이다. 비장미를 강조하기 위해 화자를 여성으로 삼았고, 그 여성의 입을 빌려 역설적으로 “팍팍한 서울길/몸 팔러 간다”고 외치게 했던 것이다.
김지하 시인이 세상을 뜬 지도 어느새 3년이 되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김지하 시인]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필명이다. 1953년 산정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면서 원주중학교에 편입했다. 1956년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중동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오적 필화 사건’ ‘비어(蜚語)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 ‘고행… 1974 필화 사건’ 등으로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생명운동 환경운동을 펼쳐왔고, 원주에 거주하며 불철주야 조선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였으며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해오다 2022년 5월 8일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영면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