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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화가 정택영, 파리의 빛으로 삶을 그리는 화가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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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영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교육 현장을 거친 뒤, 2006년 파리로 삶의 무대를 옮겨 ‘빛과 생명’, ‘파리, 파리지앵’, ‘빛의 언어’라는 연작적 흐름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다져 온 재불화가다. 그의 그림은 도시 풍경을 넘어, 빛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의 리듬을 읽어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재불화가 정택영 작가

파리로 간 이유, 그리고 다시 시작된 회화의 시간

 

정택영 작가의 이력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대학 강단과 미술교육 현장에서 후학을 길러낸 뒤, 보다 넓은 예술의 현장을 향해 프랑스로 향했다. 1986년 첫 개인전 이후 한국 화단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그는 2006년 파리로 이주하며 창작의 무게중심을 유럽으로 옮겼다. 이 선택은 단순한 거주지 이동이 아니라, 자신의 회화를 다시 묻고 다시 세우는 예술적 결단에 가까웠다.

재불화가 정택영 作

파리는 그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오래된 건축과 광장,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톤, 거리의 표정과 공기의 결까지 모두가 회화적 자극이 되었다. 그는 파리의 명소만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침묵, 붐빔과 고요를 함께 포착했다. 그래서 그의 ‘파리’는 관광지의 파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도시로 읽힌다.

빛의 언어-정택영 作

‘빛과 생명’에서 ‘빛의 언어’로 이어진 화업

 

정택영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핵심어는 무엇보다 ‘빛’이다. 그는 오랜 기간 ‘빛과 생명’이라는 대주제를 붙들고 작업해 왔고, 최근에는 이를 한층 더 응축한 ‘빛의 언어’라는 제목 아래 회화를 전개해 왔다. 여기서 빛은 단순한 조명 효과가 아니다. 존재를 드러내고, 감정을 환기하며,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조형 언어로 작동한다.

 

그의 작품에는 절제된 색채, 단순화된 형태, 그리고 때로는 상징처럼 읽히는 구조가 자리한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지나친 설명을 덜어낸 대신,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감각하고 해석하게 만든다. 파리의 풍경을 그리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장소 그 자체보다 그곳을 통과하는 삶의 숨결, 다시 말해 인간 존재의 리듬이다.

재불화가 정택영 作

파리, 파리지앵… 도시보다 사람을 보는 시선

 

정택영 작가가 지속적으로 선보여 온 ‘파리, 파리지앵’ 연작은 그의 시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에펠탑, 센강, 몽마르트르 언덕 같은 익숙한 공간도 그의 손을 거치면 배경이 아니라 삶의 무대가 된다. 거리를 오가는 인파, 카페와 골목, 계절이 스쳐 간 흔적,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적막의 순간까지 화면 속에 포개지며 파리는 하나의 거대한 인물화처럼 다가온다.

재불화가 정택영 作

특히 그가 말하는 ‘파리지앵’은 혈통이나 출생지의 개념에 갇히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파리로 모여들어 각자의 삶을 일구는 사람들, 즉 도시를 구성하는 다층적 존재들 전체를 가리킨다. 이런 시각은 재불 작가로서의 그의 위치와도 맞닿아 있다. 도시를 외부자의 눈으로 관찰하면서도, 오랜 체류를 통해 내부자의 감각으로 껴안는 태도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파리는 낭만의 기호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삶터다.

재불화가 정택영 작가

교육자, 기획자, 그리고 한불 미술교류의 연결자

 

정택영 작가는 개인 창작에만 머문 작가가 아니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경력을 바탕으로 교육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해외 한인 예술인 사회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 프랑스 조형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교류전에 다수 참가해 왔다는 점 역시 그의 화업이 국내를 넘어선 네트워크 위에서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력은 그의 작품을 더 넓게 읽게 만든다. 정택영의 그림은 개인적 감수성의 산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과 프랑스,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조형, 교육과 창작, 현장과 담론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강연과 칼럼, 교류 활동을 통해 예술이 사회와 만나는 접점을 꾸준히 넓혀 왔다.

재불화가 정택영 作

문학적 혈통과 회화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

 

정택영 작가를 둘러싼 서사는 그의 가족적 배경에서도 흥미롭게 확장된다. 그는 전통 문학의 계보와도 닿아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작업을 직접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서정성과 사유의 깊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맥락이 되어 준다. 그의 회화가 단지 시각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정서와 기억, 존재론적 질문을 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보는 그림’과 동시에 ‘읽히는 그림’이라는 인상이 있다. 색과 형은 감각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안의 침잠한 여운은 문장처럼 남는다. 이런 점에서 정택영은 파리를 그리면서도 결국 인간과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재불화가 정택영 작가

정택영이라는 이름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

 

최근 다시 소개되고 있는 정택영 작가의 의미는 분명하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라는 설명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력을 지녔다. 한국 화단의 교육 현장을 경험했고, 파리에서 오랜 시간 도시의 빛과 인간의 표정을 화폭에 축적해 왔으며, 이를 ‘생의 예찬’, ‘빛과 생명’, ‘빛의 언어’ 같은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연결해 왔다. 즉, 그는 유행을 좇기보다 자기 언어를 천천히 심화해 온 작가다.

재불화가 정택영 作

정택영의 그림 앞에 서면 화려한 기교보다 오래 남는 것은 화면에 스민 온도다. 그 온도는 파리의 빛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삶을 바라보는 태도로 귀결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멀리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낯설지 않다. 도시가 달라도 인간의 하루와 감정, 기다림과 사색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정택영은 바로 그 공통의 감각을, 빛이라는 가장 섬세한 언어로 전해 주는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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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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