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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20】 강대선의 "똥둑간"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20】 강대선의 "똥둑간"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똥둑간 / 강대선 이미지: 강영임 기자
똥둑간 / 강대선 [이미지: 강영임 기자]

똥둑간

 

강대선

 

비사표 성냥불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냄새나고 비천한 밑바닥 구더기

 

舌舌舌 온몸이 구도

 

한생이 화엄

 

『가시는 푸름을 기워』 (2024. 상상인)

 


화장실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말도 드물 것이다.

 

강대선 시인의 「똥둑간」은 단어 하나로 사람의 생각을 뒤흔든 시였다. 근심을 푸는 해우소도 아닌 똥둑간이라니,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작품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무엇을 다룰 것인지,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시의 외형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성냥개비를 무심하게 동통에 떨어뜨리면서 시가 시작된다. 구체적인 장소인 똥둑간에서 어둡고 눅눅한 공간으로, 불꽃은 잠시 환하게 일었다가 사그라진다. 성냥불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찰나의 빛이다. 어쩜, 자신의 고상함을 내려놓고 스스로 낮은 곳에 던지는 구도의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냄새나고 비천한 밑바닥 구더기는 인간이 가장 외면하고 싶은 삶의 밑바닥이다. 화려한 꽃 장식이나 경전의 언어가 아니라, 냄새나는 그곳에 불빛 하나 떨어뜨리는 그 순간, 그것이 인생의 화엄(華嚴)이다.

 

우리는 자꾸만 위를 본다. 더 맑은 곳,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지만 진짜 배움은 그 반대 방향에서 온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 축축하고 어두운 곳, 삶의 똥둑간 같은 자리에서 작지만 또렷한 불빛으로 찾아든다.

 

이제는 삶이 고르고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이가 없어 화학물질을 분비하며 더러운 것들을 먹어치우는 구더기처럼 조금 지저분하고 뒤틀려 냄새가 나더라도, 문득 몸이 먼저 느끼는 설설설한 떨림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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