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2026년 <피터 그라임스>

거친 바다는 늘 누군가를 삼킨다. 그러나 국립오페라단의 <피터 그라임스>가 응시하는 것은 파도보다도 더 잔혹한 시선이다. 오는 6월18일(목)부터 21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는 국립오페라단의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는 한 인간을 향한 공동체의 의심과 배제가 어떻게 비극으로 증폭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현대 오페라의 걸작이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1945년 발표한 대표작 <피터 그라임스>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확고히 만든 작품이다. 영국의 시인 조지 크랩의 시 '자치구(The Borough)'에서 영감을 받아 재탄생하였다. 국내 제작 초연이자 국립오페라단이 3년 연속 선보이는 현대 영어 오페라로 현대 영어 오페라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국립오페라단은 2026년 시즌 ‘WAVES’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오페라를 선택하며 인간과 사회, 그리고 집단 심리의 충돌을 무대 위에 불러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부 피터 그라임스가 있다. 견습 소년의 죽음 이후 그는 법적으로는 무죄를 인정받지만,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소문은 확신이 되고, 의심은 폭력이 된다. 작품은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타자’로 규정한 공동체가 어떻게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관객은 무대 위 인물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얼굴까지 마주하게 된다.
브리튼의 음악은 이 냉혹한 서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오케스트라는 북해의 거친 물결을 그려내고, 인물들의 불안과 공포를 섬세하게 끌어올린다. 파도 소리처럼 밀려오는 관현악과 날카로운 성악 라인은 무대 전체를 거대한 심리극으로 바꾼다. 브리튼 특유의 불안정한 화성과 날카로운 관현악법은 폐쇄적인 공동체의 긴장감과 인간 내면의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음악은 때로는 차갑고 냉철하게, 때로는 시적으로 흐르며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킨다. 특히 ‘바다 간주곡(Sea Interludes)’은 오페라를 넘어 독립적인 관현악 명곡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브리튼은 바다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거대한 자연이자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직관적이고 극적인 음악은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다채로움과 긴장감 사이의 균형, 지휘 알렉산더 조엘
2024년 화제작 <죽음의 도시>의 연출, 줄리앙 샤바
이번 무대의 포디엄에는 영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알렉산더 조엘이 선다.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해온 그는 오페라와 관현악 레퍼토리를 넘나들며 섬세한 해석과 구조적인 균형감을 겸비한 음악가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악보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뉘앙스와 긴장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휘로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그는, 브리튼 특유의 냉철함과 서정성이 교차하는 음악 세계를 밀도 있게 이끌 예정이다.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로 강한 인상을 남긴 줄리앙 샤바가 연출을 맡는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리얼리즘과 추상성 사이의 긴장감을 무대 위에 구현하며,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폭력을 날카롭게 포착할 계획이다. 동시에 음악이 만들어내는 시적이고 몽환적인 공간감을 살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폐쇄된 공동체의 숨 막히는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적 균열을 어떤 무대 언어로 구현할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타이틀 롤인 피터 그라임스 역에는 세계적인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가 함께한다. 영국 출신의 벤트리스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활약하며 파르지팔 역을 100회 이상 소화한 헬덴테너로 잘 알려져 있다. 국립오페라단과는 2013년 <파르지팔>을 통해 호흡을 맞췄으며 당시 탄탄하고 날카로운 고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2013년 도이치 베를린 오퍼의 <피터 그라임스>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지속해서 자신의 레퍼토리를 넓혀왔다. 또 다른 피터 그라임스 역에는 테너 김재석이 맡는다. 김재석은 독일 올덴부르크 주립극장과 오스트리아 빈 폭스오퍼 주역가수로 활동하며 유럽 극장을 중심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온 테너다. 유럽 극장이 사랑한 실전형 테너로 평가받는 그는 25년 만에 한국 오페라 무대에 올라 국내 관객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남길 예정이다.

무대 디자인 역시 강렬하다. 회전 무대 위에 해체되고 녹슨 거대한 배가 놓인다. 이 배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공간이자 피터 그라임스의 내면세계를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 선술집, 바닷가, 피터의 집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불안정한 정서를 시각화한다.

의상은 어부의 실제 생활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낡고 거친 질감과 빈티지한 분위기를 살렸으며, 우비, 조업복, 워크웨어 등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합창단은 그라데이션 염색이 적용된 의상을 착용해 관객들에게 집단적 이미지로 인식되도록 작업했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군중의 시선이 한 사람을 어떻게 몰아세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의심하고 배제하는지를 묻는 사회적 드라마에 가깝다. 파도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출렁이지만, 작품이 남기는 진짜 잔상은 바다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이다.
공연은 6월 18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며 자세한 정보는 국립오페라단과 예술의 전당 공연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