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38】 강경화의 "평형수"
평형수平衡水
강경화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물을 싣는다
누구도 볼 수 없는 배 밑바닥 깊숙이
먼 항해 가라앉지 않게 지탱해 줄 적당의 무게
흔들려도 걷게 하는 보이지 않는 물
사랑 슬픔, 그리움, 혹은 후회 같은
세상은 늘 출렁이고 나는 자주 기운다
오늘을 살아가는 균형을 잡아 줄
당신이란 이름을 가슴에 채운다
기우는 나를 지탱하는 내 안의 평형수
《나래시조》 (2025. 가을호)

물 위에 떠 있는 배는 언제나 불안하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물이 무게는 감춘 것이 아니라, 존재의 진실을 품은 상태다. 배가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은, 그 밑에 감춰진 평형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보이지 않는 무게를 인간의 내면으로 끌고 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동안 외면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알 수 없는 깊이를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 슬픔, 혹은 아직 덜 아문 사랑이거나 상처일 수도 있다. 그 무게들은 무겁지만 동시에 우리를 ‘바로 세우는 힘’이 된다.
“세상은 늘 출렁이고 나는 자주 기운다”
이 한 문장의 진술은 단순한 자아의 고백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실의 서술이다. 세상은 언제나 출렁이고, 그 흔들림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중심을 잃는다. 시인은 그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며 기울지 않으려는 마음의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균형을 잡아 줄 / 당신이란 이름을 가슴에 채운다”
여기서 ‘당신’은 단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시적 화자가 외부 세계 속에서 찾은 ‘중심의 상징’이다. 그것은 타자이자 동시에 자신이기도 하다. ‘당신이란 이름’은 내면의 닻(anchor)이다. 시인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지탱하며, 나를 지탱하는 내 안의 평형수를 발견한다.
「평형수」의 언어는 격정이 아니라 절제에서 나온다. 문장마다 ‘적당한 무게’를 지니며 물의 결처럼 투명한데 그 속에는 깊은 심연이 깃든다. 은유의 정제, 균형의 리듬, 절제된 감정의 윤리가 이 시가 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삶은 언제나 출렁이고 감정은 늘 흔들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균형을 잡으려 한다. 그 균형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길러지는 단단한 ‘평형수’의 힘이다. 스스로에게 무게를 허락해야 하고 그 무게는 결국 ‘자신’이라는 이름의 물인 것이다.
오늘 내가 품은 평형수는 얼마의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곷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