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탐방] “예술은 살아 있는 것” — 조영남 초대전 & 작은 콘서트 현장 스케치

8월 8일 저녁, 서울 성수동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열린 ‘조영남 초대전’과 ‘조영남 작은 콘서트’는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한 예술가의 반세기 여정을 되짚는 감동의 무대였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어우러진 이 행사에는 200여 명의 초대 관객이 함께하며 깊은 울림을 나눴다.

1973년부터 2025년까지, 붓으로 써 내려간 인생
조영남의 첫 개인전은 1973년 안국동 한국화랑(현재는 폐관)에서 열렸다. 당시 서울대 미대 2학년생이던 친구 김민기가 전시를 기획했고, 추천서까지 직접 써주며 “가수의 그림”이라는 편견을 깨는 데 앞장섰다. 조영남은 “믿거나 말거나 김민기가 천재였다는 걸 알리는 기회가 되어 기쁘다”고 회고했다.

그는 군 제대 말기, 윤여정의 미아리 집 마룻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김민기는 옆에서 통기타를 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음대생은 그림을 그리고, 미대생은 음악을 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화투, 바둑판, 소쿠리… 일상이 예술이 되다

대표작인 ‘화투 시리즈’는 미국 유학 시절 교포들이 화투를 치며 향수를 달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화투 속에도 그림이 있다”며,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는 철학을 담아 한국인의 일상 속에서 예술을 끌어냈다.
그의 작품은 ‘어른아이’ 같은 순수함과 고집, 그리고 ‘옛날 사람’의 향수를 담는다. 소쿠리, 노끈 등 입체 오브제를 활용한 꼴라주 설치작품은 “진짜 같은 그림”이 아닌, 현실적 물체를 화면에 끌어들여 “일상이 예술”임을 보여준다.
작은 콘서트, 큰 울림

8일 저녁 열린 ‘조영남 작은 콘서트’에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어우러진 무대가 펼쳐졌다. 이화숙, 임형원, 임원호 등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함께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2부에서는 아티스트 톡이 이어졌고, 조영남은 관객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특히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릴 겁니다. 손이 움직이는 한, 나는 그릴 거예요.”
그의 대답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예술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가장 행복한 때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라며, “재밌게 사는 게 최고”라는 인생관을 전했고, “가장 후회한 일은 자식이 있음에도 부인과 이혼한 것”이라고 털어놓으며 인간적인 면모도 드러냈다.

특별한 인연들
정대철 헌정회 회장은 “조영남은 오뚜기 같은 사람”이라며, “위기 때마다 일어나는 긍정의 아이콘”이라 말했다. 두 사람은 정 회장의 모친 이태영 여사가 대학 시절 시위로 체포된 조영남을 감옥에 가지 않게 도운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배우 김혜경도 참석해 “조영남 화백의 그림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며, 자신도 그룹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남준과의 인연,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찬사
조영남은 이날 백남준 작가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미국에서 교류하던 시절, 백남준의 부인이 조영남을 가리켜 “백남준과 가장 닮은 천재”라고 칭찬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자신에게 큰 용기와 자부심이 되었음을 밝혔다.
또한 말년의 백남준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랑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조영남은 이 말을 인용하며 “나도 죽는 날까지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논란과 복귀, 그리고 예술의 힘
2015년 ‘대작 논란’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그는 5년간 활동을 중단했지만, 2020년 무죄 판결 이후 개인전을 재개하며 “국가가 나를 화가로 키워줬다”는 너스레를 떨었다. 이후 방송에도 복귀하며 ‘스토리 있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50여 회의 개인전과 60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작업한 작품은 약 2000여 점에 달한다.
이번 초대전은 단순한 회고가 아닌, 조영남이라는 예술가의 복합적 매력을 조명한 문화 축제였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여름밤은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