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해설] 백승찬의 "악몽의 수학 문제집"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6]
악몽의 수학 문제집
백승찬
수학 문제집 안에는
정답의 피를 원하는 네모 칸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리고
각도기의 영혼을 원하는 각 귀신들이 득실거리고
숫자용 구슬을 원하는 큰 수 드래곤들이 우글거리고
원의 뼈를 원하는 모눈종이 예티*들이 득실거리고
더 큰 수의 살갗을 원하는 부등호 네시*들이 우글거리지
마지막으로 최상위 괴물, 사칙연산 기호들!
그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너의 두뇌지!!!!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예티: 히말라야산맥에 사는 털북숭이 유인원 괴물.
** 네시: 스코틀랜드 네스호의 호수 괴물.
—『코딱지 송』(고려책방, 2022)

[해설]
수학이여 멀리 가다오
백승찬 군이 2022년 대구 성동초등학교 4학년 때 이 동시집을 냈으니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일 것이다. 승찬이는 수학 문제집이 정말 싫었나 보다. 수학 문제집 안에 정답의 피를 원하는 네모 칸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리고, 각도기의 영혼을 원하는 각 귀신들이 득실거리고, 숫자용 구슬을 원하는 큰 수 드래곤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니. ‘큰 수’가 좀 헷갈린다. 큰 수(數)인지 큰 수놈인지 모호하다. 뒤에 나오는 “더 큰 수의 살갗”을 보니 큰 숫자가 아닌가 한다.
원의 뼈를 원하는 모눈종이 예티나 더 큰 수의 살갗을 원하는 부등호 네시는 드라큘라 내지는 좀비 같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모눈종이와 부등호는 수학의 부하들이다. 잘 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아이는 수학이 너무 무섭다. 수학과 씨름하는 꿈은 완전히 악몽이다.
최상위 괴물인 사칙연산 기호가 원하는 것은? 나의 두뇌를 집어삼키고 싶어 하니 흡혈귀 아니면 좀비다. 그런데 우리는 초, 중, 고교 시절에 참 많은 시간을 수학 공부에 투자해야만 한다. 졸업하면 뭐 하나 남는 게 없는 것도 수학이다. 인수분해나 미분, 적분 문제를 아무리 잘 풀어도 현실적으로 써먹을 데가 없다. 승찬이는 수학이 밉지만 종반부에 가서 재미있는 농담으로 마무리한다. 미워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강남의 아이들은 조기교육의 여파로 중학교 학생 때 이미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을 푼다고 한다. 그렇게 죽으라 하고 공부한 것을 두고 ‘수학능력 향상’이라고 마냥 좋아해야 할까? 이 땅의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과 수학교육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바람직한 교육인지 잘 모르겠다.
[백승찬 군]
대구 성동초등학교 4학년. 자기만의 캐릭터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