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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9] 류규형의 "아버지 또래 암소"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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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또래 암소

 

류규형

 

일에 싫증이 나자 황소는

멍에를 걷어차고 주인을 들이받았다

아버지 오른쪽 턱

상처가 크고 깊었다

함께 살던 젊은 황소 꽁꽁 묶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길

젊은 황소

늙은 아버지 오랫동안 함께 울었다

 

아버지 퇴원하는 안성 장날

우시장에서 새로 사 온 소

목주름에 자글자글 겁이 가득 찬

아버지 또래 암소였다

 

가을걷이가 바쁜 들녘에서

힘이 들면 주인 꼬드겨

미루나무 그늘에서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그렇게

쉬엄쉬엄 또 함께 살았다

 

―『이화주 빚으며』(계간문예, 2021)

 

소와 아버지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소를 죽였다

 

  예전에 밭갈이 소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너무 화가 났다. 이건 착취예요. 과로사하면 책임질 거예요?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고 화가 난 것인가. 집에서 키우던 황소가 아버지를 들이받았다. 아버지의 오른쪽 턱에 난 상처가 크고 깊었다고 한다. 주인을 한 번 그렇게 한 황소는 또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변에서 저 소는 팔아야 한다고 난리였다.

 

  주인을 배반한 저놈의 소를 계속 데리고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도살장에다 팔고 말았다. 젊은 황소와 늙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함께 울었다는 표현이 가슴을 후벼 판다. 아버지는 퇴원하고 오면서 안성 장에 가서 아버지 또래의 늙은 암소를 사 왔다. 일을 시키려면 반항기가 있건 말을 잘 안 듣건 젊은 황소를 사 왔어야 했다.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늙은 암소 한 마리를 사 오신 것이었다.

 

  같이 늙어가는 사람과 소. 사람이 술을 마실 때 그 옆에서 암소는 내 아버지한테서 따뜻한 정을 느꼈을 것이다. 교감하고 소통하는 두 늙은이는 친구 같다. 암소는 아버지를 들이받을 일도 없었고, 순하고 얌전하다. 그래도 소가 먼저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우리는 소고기를 먹을 때 소를 생각하며 먹는가? 비싸다 싸다, 질기다 부드럽다, 국내산이다 외국산이다, 뭐 그런 것만 따진다. 주인한테 잠시 반항했다가 도살장에 끌려간 황소는 많은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 돼지, , 오리 같은 가금류(家禽類)는 우리의 뱃속을 채워주지만, 이들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을 가져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마음으로나마 애도의 뜻을 표해야겠다. 불쌍한 것들. 고맙고 미안하다.

 

  [류규형 시인]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국립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경기대 평생교육원 전통주 강사 및 화천군 농업인 대학 전통주 강사를 지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고, 2018 《계간문예》로 등단하였다. 계간문예작가회 이사로도 활동하며 현재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면서 전통주 연구와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공저서 『운현시사』, 저서 『우리 쌀로 빚는 전통주 이야기』, 시집 『이화주 빚으며』 등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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