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8] 엄세원의 "미완성 유서"
미완성 유서
엄세원
웰다잉 입관 체험을 하고 돌아온 날
촛불 켜놓고 유서를 쓰기로 한다
백지 한 장과 볼펜 하나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호흡을 훑어내린다
마치 마음과 몸을 스캔하듯
촛불은 자극 없이 둥글어지려 하고
나는 모든 자극을 펜 끝에 고이려 한다
유서는 그렇게 시작된다
맑아야 생겨나는 생각이 있다면
검불 범벅의 실체가 있다
실체는 생각 돕기 위해 자신을 태운다
거불거리는 촛불 속에서
파랗게 스며 나오는 나 아닌 나의 눈빛
철저하게 자신을 타인으로 내몰아야만
볼 수 있는 저편의 세계
문장이 그 사이를 잇고 있다
촛불이 그을음을 내뿜고 있는 건
행복의 심지에는 녹록지 않은 불행이
연결돼 있다는 것
촛농은 논리적으로
녹아 흐르는 고백을 하고 있다
세상에 와 잠깐 살다 꺼질
생의 방출,
한 문장씩 적히고 있다
죽음의 두려움은 단순성을 지나
복잡성에 이르러 몸을 살라 먹으므로
한 손에 턱 괴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창은 푸르고 어떤 창은 붉다
빠져나올 수도 있고
빠져나오지 못해 눈감을 수도 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미완성이
육십에 이르렀다
어쩌면 지금의 유서가
내 생애를 써왔는지 모른다고
나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붉고 윤이 나는 농담』(달아실, 2025)

[해설]
유서는 대필할 수 없습니다.
‘웰다잉 입관 체험’이라는 것이 있군요. 거길 다녀오면 유서를 써보나 봐요. 촛불을 켜놓고 쓰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쓸 수 있도록? 나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는 거겠지요. 나의 배우자나 자식에게 당부하는 내용으로 쓰겠네요. 그런데 촛불이 중요한 역할을 하네요. 초가 거의 다 타 꺼지려 할 때, 그을음도 나고 심지가 결국 촛농에 까무룩 잠겨 꺼지겠지요.
엄세원 시인은 유서의 내용보다는 초의 상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초는 곧 사람이고 사람의 일생이고, 초가 다 타는 순간이 인간의 최후를 연상케 하니까 그런가 봅니다. “행복의 심지에는 녹록지 않은 불행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불운과 불행의 연속이고 행복이나 평안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지요. 특히 나이가 예순에 이르면 몸 여기저기서 조금씩, 혹은 왕창 고장이 납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단순성을 지나 복잡성에 이르러 몸을 살라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죽음이 한참 뒤에나 올 줄 알았는데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더 커가겠지요. 세월이 지날수록 삶은 짧아지고, 죽음은 가까워지고. 유서에 별 내용이 나오겠습니까. 재산이 아주 많다면 모르겠지만. 잘 살아라, 잘 지내라 이런 당부의 말이나 미안하다, 용서해라 같은 사과의 말을 하지 않을까요? 시인은 어쩌면 유서가 살아서 내 생애를 써왔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표는 못 찍겠다고 했습니다. 엄세원 시인을 본받아 미완성의 유서라도 써두어야겠습니다. 그 유서를 떠올리면 오늘 하루, 무위도식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 테니까요.
[엄세원 시인]
2014년 강원문학 신인상,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숨, 들고나는 내력』『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가 있다. 홍성군 문화ㆍ관광 디카시 공모전 대상, 강원시니어 문학상 대상, 대구신문 신춘디카시공모전 우수상, 제2회 이충이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