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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15】김수엽의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15】김수엽의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 김수엽 이미지:  강영임 with Ai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 김수엽 [이미지: 강영임 with Ai]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

 

김수엽

 

언덕은 칼바람을 부추기는 사막으로

흰 먼지 앞장세우고

대들며 오는 설국에

아침을

챙겨입고 온 한 쌍의 숨 먹먹하다

 

바닥을 들출수록 더 단단한 바닥이 와

그 입술 얼게 만드는 허탕인 노동들을

나무는

다 벗은 채로 바람 불어 놀린다

 

발자국 길이 된 길 허탈을 걸쳐 입은 입

고장 난 저 들판에다 숨겨놓은 보물이여

돋아라

초록의 불씨 오 들려오는, 숨기척

 

『자음과 모음이 흙과 만나』  (2025. 상상인)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시대다.

 

자본주의는 자산이 자산을 낳고, 빈곤이 빈곤을 낳는다. 뿐만 아니라 기회의 불균등,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하면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저임금으로 밀려나고 있다.

 

김수엽 시인의 「염소는 초원을 기억하고 달린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관찰자 입장에서 사물들을 의인화(擬人化)한 작품이다. 가볍게 읽으면 염소 한 쌍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약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이 서 있다.

 

제목에 나타난 염소는 이 시대의 노동자,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대변한다. 염소는 거친 지형에서도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지만 칼바람, 사막, 흰 먼지, 설국처럼 가혹한 환경은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더욱이 가진 자, 우위에 있는 자를 의인화한 나무의 놀림이나 비아냥거림은 그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할 것이다.

 

노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염소는 고장 난 들판에서 벗어나려 한다. 숨겨놓은 보물 찾듯 일어서려고 한다. 그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의 겨울까지, 언덕은 초록불씨를 키려고 숨기척을 하고 있다. 그 숨기척이 초록을 키우고 드넓은 초원을 만들 것이다. 모두가 꿈꾸고 모두가 행복한 그런 초원을 향해 염소는 달려 나갈 것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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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시인#시조해설#김수엽시인#염소는초원을기억하고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