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난蘭꽃이 춤을 춘다 - 김영희
두어 달 전 어느 집에서 밖에 화분을 내놓았다.
집을 처분했는지 그 집의 많은 화분이 길거리에 나앉은 것이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겉보기에 화초는 대체로 튼실했다. 주인이 정성껏 가꾼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예전에 키웠던 난초가 생각나서 다시 키우고 싶어졌다. 그중에 난분이 몇 개 있어서 아까운 마음에 난분과 산호초 화분을 집으로 가져왔다.
화초가 새로 이사했으니 시원하게 목욕시켜 주고 바람을 느끼라고 베란다에 며칠 두었다. 더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난분을 거실로 들였다. 어느새 새 촉도 몇 대씩 올라와 빈자리를 채웠다.
며칠 전, 난 한분에서 마알간 연둣빛 꽃대가 두 대나 올라오더니 꽃망울을 품었다. 몽글몽글 매달리던 연둣빛 몽우리가 점점 부풀면서 옅은 분홍빛으로 변신한다. 몸집을 불리던 분홍 꽃봉오리가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그만 탁! 하고 벌어졌다. 가늘게 벌어진 틈 사이로 향기를 쏟으며 모습을 드러낼 꽃잎이 궁금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가가 벌어진 틈을 살핀다. 언제쯤 꽃잎을 열까.
난도 더웠는지 점점 불리던 꽃봉오리를 두 송이씩 연달아 터뜨렸다.
탁! 탁! 수줍게 숙인 고개를 살포시 든다. 반가운 마음에 꽃에 가까이 코를 대고 향기를 들숨으로 내 몸에 들여보낸다. 온몸에 난향이 퍼진다. 아! 향기로운 꽃이여! 가녀린 연둣빛 꽃에서 난향이 온 집안에 퍼져나간다. 이 뜨거운 여름, 은은한 난향에 지친 몸이 다시 살아난다. 연신 땀을 흘리고 있는 난. 보고 또 보고 또 가까이 다가간다.

난꽃이 춤을 춘다. 연두 바탕에 자주 수를 놓은 듯 찬란히 빛나는 자태. 수줍어 고개 숙인 난꽃이여. 며칠 사이로 연달아 꽃잎을 펼친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 우아하다.
난꽃이 춤을 춘다. 연두에 자줏빛 줄무늬를 두른 꽃이 흥에 겨워 두 팔을 벌리고, 날렵한 버선 끝으로 다섯 장 꽃잎은 장구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한 대에는 네 송이가 또 한 대에는 일곱 송이가 차례로 일어난다.
난꽃이 연두 바탕에 자주색 옷고름을 드리운 고운 한복 차림으로 춤을 춘다. 각기 다른 몸동작. 흥에 겨운 한마당 잔치가 벌어졌다. 얼씨구 좋다.
난꽃이 훨훨 난다. 꽃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큰 발동작으로 훨훨 날아 허공에 제 모습을 새기며 나비가 된다. 줄을 이어 날아가는 모습. 내 눈앞에서 네 마리, 일곱 마리 모두 한 줄로 날아간다. 비상飛翔을 꿈꾸는 난꽃.
인위적인 향은 코를 자극하고 뇌를 흔들어 심란해지지만, 자연의 향기는 은은하게 온몸으로 스며들어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온몸에 난향이 깊숙하게 배인다.
나도 어느새 한 마리 나비가 된 듯.
아! 이 뜨거운 여름, 난 꽃이 춤을 춘다.
- 김영희 '난蘭 꽃이 춤을 춘다'

[수필 읽기]
누군가 버리고 간 화분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생생한 초록잎이 살아있는 화분들은 주인을 잃은 채 아파트단지 쓰레기통 옆에 버려졌다. 누구든 가져가려면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듯 주인을 잃은 화분들이 쓸쓸한, 그 주인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 화분들은 모두 목 말라 시름시름 하다가 생명을 잃게 될 것이 뻔해서 집으로 들였다. 다른 집도 화분 몇 개를 가져갔다. 다행이었다.
새집에 왔으니 기분도 바꿀겸 새로운 마음으로 살라고 몸에 물을 흠뻑 뿌리고 목욕을 시켜줬다. 그동안 끼어있던 아픔이나 상처 같은 것 모두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집에서 같이 잘 살자는 반가움의 악수 같은 것이다.
처음에 베란다에서 바깥 공기를 쐬며 마음을 삭히고 난 후, 가까이 보고자 난분은 거실로 옮겨 놓았다. 그렇게 새집에 적응해 가던 난이 어느 날 연두색 꽃대가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저희들을 거두어준 새 주인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였을까.
연둣빛 꽃대가 두 대로 늘어나고, 꽃대에 작은 꽃봉오리를 하나씩 달더니 네개, 일곱 개로 점점 늘어났다. 줄기가 위로 뻗으며 꽃봉오리도 하나씩 더 맺혔다. 뿌리로 부터 힘을 모아 꽃봉오리를 밀어올리느라 힘들었는지 꽃대에 물기가 대롱대롱 맺혔다.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해 힘을 쓰며 힘들어 하듯이 난도 꽃봉오리를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드디어 그렇게 올라온 꽃봉오리가 더위를 못 이겨 하나씩 꽃잎을 탁! 탁! 터뜨렸다.
벌어진 꽃잎 사이로 난 향이 새어 나온다. 작은 꽃잎 어디에 그 향기 가득 품었을까.
사군자士君子에 매화(매) 난초(난) 국화(국) 대나무(죽)이 있다. 모두 선비들의 고결한 인격과 지조를 상징한다.
매-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난-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드린다. 난초의 향기와 고귀함의 찬미 그리고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이다. 국-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핀다. 지조와 은일의 상징이다. 죽-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 즉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다.
난향 만큼이나 향이 멀리까지 퍼져나간다는 천리향이 추운 2월부터 꽃봉오리를 맺더니 하나씩 피어났다.
꽃과 줄기는 작고 빈약해 보이는데 어디에서 그런 강한 향이 나오는지 놀랍다. 꽃은 보랏빛으로 아름다웠다.
천리향향을 맡고 싶어서 추운 날인데도 거실문을 조금 열어 놓아 천리향 향기가 집안에 퍼지도록 하였다.
오래전 사군자를 배울 때 난잎과 난꽃을 그리며 꽃잎을 최대한 맑게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맑은 것은 깨끗하고 순수함으로, 감정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다.
언제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건강에 가장 중요하겠다. 명상은 스트레스 감소, 집중력 향상, 감정 조절, 수면 질 개선, 자아 인식 강화 등 많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매일 몇 분이라도 명상을 하는 삶을 생활화 해보시길.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