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상희구의 "수선화 편지 13"
수선화 편지 13
상희구
바야흐로 천지에 꽃들이 만화방창입니다
어째서 수선화 옆에는 금잔화가 피었고
그 앞에는 버베나가 피었고
그 뒤에는 시네라리아가
그리고 수선화 뒤뒤 앞에는
팬지가 피었고,
또 그 위에는 디기탈리스가 피었습니까?
또 나무들도 무성합니다
어째서 느릅나무는 서어나무와는
많이 떨어져 있고
낙엽송, 가문비나무, 히말라야시다, 금송,
황금편백나무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까?
한참 떨어져 노간주나무 한 그루가 홀로
떨어져 있습니다
참 오랜만에 은수원사시나무를 보았습니다
자작나무, 굴피나무, 참개암나무, 호두나무,
사방오리나무들은 너무 무성해서
마구 뒤엉켜 있군요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배열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수선화 편지』(오성문화, 2024)

[해설]
나무들도 질서 의식이 있다
화서(花序)라는 한자어가 있다. ‘꽃차례’가 우리말인 이 말의 뜻은 꽃이 줄기나 가지에 배열되는 모양 혹은 붙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꽃대가 갈라진 모양에 따라 무한화서와 유한화서로 나뉜다. 다시 말해 꽃들도 피어나는 순서가 있다,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꽃이 예쁘다, 혹은 향기롭다고 하며 며칠 완상을 즐기다가 시들면 외면하거나 내다버린다. 꽃 하나가 봉오리를 맺고 피어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일이다.
나무나 꽃나무들은 산이나 숲에서 뿌리를 내리고 한 자리에서 살다가 먼 훗날 고사목이 되는데, 시인이 보니까 그 나무들이 각자 영역이 있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임의로 조림을 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숲에 가보니까 수선화 옆에는 금잔화가 피었고 그 앞에는 버베나가 피었고 그 뒤에는 시네라리아가, 그리고 수선화 뒤뒤 앞에는 팬지가 피었고 또 그 뒤에는 디기탈리스가 피어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시인의 관찰은 더 이어졌다. 느릅나무와 서어나무는 많이 떨어져 있고 낙엽송, 가문비나무, 히말라야시다, 금송, 황금편백나무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었다. 노군자나무는 그들과 한참 떨어진 곳에 한 그루만 있는 것도 신기했다. 자작나무, 굴피나무, 참개암나무, 호두나무, 사방오리나무들은 너무 무성해서 마구 뒤엉켜 있는 듯했다. 시인은 그런 나무들을 보면서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배열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시인이 이렇게 말하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은 영역 다툼을 확실히 하는데 식물은 하는지 안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시를 보니 하는 것도 같다. 자기네들끼리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하면서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리는 것이 신기하다. 나무들의 질서의식을 인간들이 본받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나무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밭이나 사과밭 같은 과수원을 만들고, 때로 온통 한 종만을 심고, 분재를 하고, 어떤 때는 집이나 공장을 짓는다고 수십 년을 산 나무들을 잘라버린다.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잘리고 뿌리뽑히는 나무들이 사실은 우리를 살려왔다. 전 세계적으로 나무는 수세기 전의 1/10 정도 남아 있다는데 1/100 정도 남게 되면 지구 자체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나. 나무에게 죄를 너무 많이 지어 인간은 결국 지구에서 퇴출된다?
[상희구 시인]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발해기행』『요하의 달』『숟가락』 등을 펴냈으며 2010년 연작장시 「대구」를 월간 《현대시학》 4월호부터 연재 시작하여 2012월 2월호에 100편 대장정을 마쳤다. 199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이다. 2022년에 10권의 대구 소재 시집을 2권의 전집으로 묶었으니 『대구시지(大邱詩誌)』이다. 상권은 860쪽, 하권은 994쪽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