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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21】 김소해의 "하지감자"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21】 김소해의 "하지감자"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하지감자 / 김소해 사진: 강영임 기자
하지감자 / 김소해 [사진: 강영임 기자]

하지감자

 

김소해

 

악보에 담지 못한 노래가 여기 있네

어매의 어매로부터 그늘이 물든 소리

내딛는 걸음걸음이

그냥 그대로 화음이던

 

문자보다 음표보다 먼저 태어난 노래여서

아리랑 굽이굽이 일렁이는 마음이던

완창도 절창도 아닌

시작도 끝도 따로 없던

 

감자밭 감자두둑 알이 굵은 까닭이사

밭고랑 호미질에 노래가 얹힌 때문

가시고 한참 후에도

알은 여직 굵어 있네

 

『서너 백년 기다릴게』 (2023.황금알)

 


 

여름감자가 제철이다. 갓 수확한 감자를 쪄내면 모락모락 퍼지는 김에서 포슬포슬한 속살이 드러난다. 그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으면 첫 입엔 고요함, 다음 입엔 푸른 여름이 펼쳐진다.

 

김소해 시인의 「하지감자」는 여름감자도 아닌 하지감자를 제목으로 두었다.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을 설정함으로써, 노동의 힘듦을, 한 단어로 응축한 수작(秀作)이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 마음으로 걸어 들어와 읽는 내내 불편했던 시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노래를 몰랐지만 그 노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어매의 어매로부터 그늘이 물든 소리허리 굽혀 해가 질 때까지 감자밭을 가르던 그 걸음, 호미질 한 번마다 끊기듯 이어지던 그 노래, 그것은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문자보다 음표보다 먼저 배운 흥얼거림이었다. 땡볕 아래 몸으로 오가며 캤던 감자는, 어머니의 비린 땀내로 태어났고, 이름 없는 리듬으로 태어났다. 완창도 절창도 없고, 기교도 절정도 없는 삶 그 자체였다. 아리랑 굽이굽이 일렁이던 마음은 감자밭의 고랑을 타고 흐르는 노동의 흐느낌이자, 여름 더위의 숨참이다.

 

어머니는 밭을 떠난 지 오래지만 감자의 알은 여전히 굵다. 여름 햇살 아래 감자밭에서 들렸던 무명의 가락은 멈추면 사라지고, 잊으면 다시 들리는 몸으로 부른 노래였다. 다시 땅으로 놓여진 그 노래는, 아직 감자 알속에 굵게 남아 흥얼거린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개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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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시조읽기#김소해시인#하지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