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심재휘의 "바람 뭉치"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26 ]
바람 뭉치
심재휘
주먹만 한 깃털 뭉치는
아침마다 흑심 같은 부리로
창문에 씁니다 그러나 유리에는
아무것도 새겨지는 것이 없으니
나는 창문을 엽니다
한 알의 바람이 자라
깃털 뭉치가 되는 긴 시간에
나는 불을 만들었고
노래를 짓고
사랑을 엮었습니다만
그의 말이 안부인지 추모인지
혹은 작별인사인지도 모르고
아침을 기다리기만 합니다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문학동네, 2025)에서

"그러나 유리에는 아무것도 새겨지는 것이 없으니 나는 창문을 엽니다" [이미지: 류유강 기자]
[해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이 시를 쓸 때 심재휘 시인은 대한민국 각지에서 산불이 이렇게까지 많이 일어나고 또 이렇게 크게 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3월 하순, 전국의 산야가 바짝 말라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에 의한 실화가 큰 산불로 번져 시방 수많은 지역이 엄청난 화마에 휩싸여 있다. 마침 이런 때 이 시를 읽으니 지금 이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지어지고, ‘하늘이 벌을 내리나 봐’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제1연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깃털 뭉치 같은 것이 좀 날리나, 그래서 창문을 열어보는 정도에서 끝난다. 하지만 2연에 가면 내가 불을 오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전부 사람이 낸 불이다. 그 이후에는 불이 불을 부른다. 노래를 짓고 사랑을 엮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제2연을 읽으니 고 김새론과 유족 대 김수현과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가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진실공방전이 떠오른다. 물론 시인은 그런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고서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안부인지 추모인지/ 혹은 작별인사인지 모르고”라는 시구를 보니 견강부회겠지만 그들의 끈질긴 진실공방전이 이제는 지겹게 생각되는데 하필이면 바로 이때 산불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호주에서도 몇 년 전에 엄청나게 큰 산불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땅이 워낙 넓다 보니 불이 지쳐서 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운동장 수백 개 면적이 타고 있는데 지금 바람은 뭉치를 이뤄 불고 있다. 아침이 오면 불길이 꺼질까? 지리산으로는 번지지 않을까?
왕조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왕이 기우제를 지냈다. 내가 부덕하여 나라가 이 꼴이 되었고 백성이 굶주리고 있으니 하늘이여 부디 노여움을 거두고 비를 내려주십사 하고 하늘을 우러러 간청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과 관과 군이 총력을 기울여 불길을 잡아야 한다. 정적들이 싸우는 중이라 산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가? 헤파이스토스는 불의 신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의 신한테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불이 이 난리를 칠 줄은 그도 불의 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지연의 노래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불러본다.
해가 뜨면 찾아올까
바람 불면 떠날 사람인데
행여 한 맘 돌아보면
그대 역시 외면하고 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세월 가면 잊혀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걸
붙잡아도 소용없어
그대는 왜 멀어져 가나
바람아 멈추어다오
난 몰라 바람아 멈추어다오
바람아 멈추어다오
[심재휘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진대학교 문예콘텐츠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독저서로는 『한국현대시와 시간』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장소철학1, 2』, 『좌절의 시대, 분노와 혐오의 공간도시 현상학』, 『통합과 번영의 환상도시 사회학』 등이 있다.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등을 출간했다.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