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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 책다락 70]라이너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효산 남순대 시인
입력

 

●책 소개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길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세계가 단지 밈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단지 하나의 문일 뿐이다. 독자는, 도슨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 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아홉 번째 권으로 출간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 도슨트 변지영은 임상심리학 박사라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얼굴’이라는 키워드로써 타인의 시선과 기대 속에서 끊임없이 해석되고 규정되며,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을 피할 수 없었던 인물의 심리를 파헤쳐 나간다. 세상에 드러나는 가장 쉬운 평가 대상인 얼굴은 나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자주 노출되며, 타인의 반응에 따른 변화를 그대로 보여 주는 신체 부위인데, 경험과 상상, 실제와 허구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소설에는 ‘얼굴’이라는 단어가 144번이나 등장한다. 과연 릴케에게, 그리고 말테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였을까 
 

●Synobsis

시인 릴케가 ‘자기 치료’의 과정에서 탄생시킨 소설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의 수기』


문학 + 철학으로 이루는, 나의 삶과 세계 경험의 확장!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9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아홉 번째 권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이다. 20세기 시인 중 여전히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독자층을 거느린 시인 릴케이지만, 51세의 나이로 발몽 요양소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정작 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에게 고통과 고난은, 줄이거나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느끼고 받아들여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진실’이었다. 시인 릴케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말테의 수기』의 원제는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의 수기』인데, 써내는 데만 꼬박 6년이 걸린 작품이고, 전통적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시각이 요구되던 20세기 초반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케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케 한다. 문학이라는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 문학의 세계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완충지대가 될 뿐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만의 특별한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종종 난관에 빠뜨린다. 그리하여 작품은 표면적으로만 이해되거나 읽기가 애초에 포기되기도 한다. 이에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이 기획되었다.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면, 그리하여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든다면,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날 것일 터이므로.
 

종종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으로 취급되지만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다르다.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가 있다. 문학 고전을 처음 읽는 독자들, 자신만의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을 위한 중요한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표지를 앞표지처럼 구성하여 해설을 첫 페이지처럼 읽게 했다. 문학과 맞물린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말테를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

삶의 요소들이 전적으로 이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은 늘 불충분하고 결단은 항상 불확실하며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해설 10쪽)
 

1900년대 초반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회 구조의 변화, 가족 구조의 해체, 개인의 정체성 위기 등을 초래했다. 릴케는 대도시의 익명성에서 경험했던 소외, 고독, 파편화를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 매끄럽게 연결된 이야기 구조가 아닌, 여러 개의 파편과도 같은 글들을 이어 붙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포와 열망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한 겹 한 겹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들, 열망들을 붙여 나간다. 이 조각들은 저마다 특성도, 길이와 구조도, 문체도 다르지만, 단편적인 조각들을 다 읽고 나면 놀랍게도 하나의 완성된 모자이크 작품으로 느껴진다. 한 조각 한 조각이 맞물려 서로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첫 번째 차원은 말테가 파리에서 겪는 현재의 경험, 두 번째 차원은 덴마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리고 세 번째 차원은 역사적 사건과 예술가들에 대한 말테의 사유와 상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세 차원은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관계와 의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계속 변화하는 어조는 서사적 안정감을 의도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독자는 읽는 내내 미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고립과 불안, 자아 해체라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자기 변혁의 과정으로 바꾸어 내다!
 

릴케는 자기와 타인, 내면과 세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자아가 해체되는 상태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 상태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분열형 인격 장애나 조현병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치료가 필요한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나 릴케는 그 경험을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자기 변혁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 『말테의 수기』인 것이다.
 

주인공 말테에게 내면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낯선 세계이며, 외부의 것들이 거침없이 침투해 와 흔들리는 공간이다. 자기와 타인의 경계, 바깥세상과의 구분이 종종 희미해지는 이러한 경험은 주인공 '말테'의 불안과 혼란을 더욱 심화시킨다.
 

나는 몸이 화끈거리고 화가 치밀어 거울 앞으로 달려가 가면을 통해 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거울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이제 복수할 시간이 찾아왔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져서 어떻게든 내가 변장하려고 몸에 걸친 것들을 벗으려 애썼다. 그러나 거울은 어찌 된 셈인지 나로 하여금 억지로 얼굴을 쳐들어 거울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영상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대하고 낯설고 끔찍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데도 내 의지와는 반대로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현실이었다. 이제 그것은 더욱 심해졌고 나는 거울이 되었다. 내 앞에 있는 미지의 존재를 응시하면서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순간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본문 127쪽)
 

어린 시절, 말테는 방에서 몰래 다양한 의상을 입고 가면을 써 보며 변장하던 중에 거울을 보다가 의상과 가면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벗어 던지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그것들을 떼어 낼 수 없어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외친다. 타인과 관계 맺을 때, 말테는 자신이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반응하면 결국 그들의 얼굴과 닮아 가며 자아를 잃어버릴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얼굴은 자아를 상징하며, 얼굴이 덮이거나 대체되는 것은 자아의 소멸을 의미한다.
 

릴케는 자신의 공포와 혼란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층 성숙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릴케가 평생 분열과 혼란 속에서 살아가며, 현실에서 온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지기 어려웠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통제하려 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우울했던 그녀는 아들의 감정이나 내면에는 무관심했으며, 이러한 관계는 릴케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 주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내적 갈등과 고립감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립과 자아 해체의 불안 속에서, 그러나 릴케는 하나의 전체, 즉 전일성에 헌신했다. 그는 하나의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여럿으로 나누어 보았고, 전체를 이루기 위해 파편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모든 불일치와 거짓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소설을 쓰면서 릴케는 평생 동안 자신을 이끌었던 질문, “인간 세계의 유한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의식은 과연 형이상학적 전일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마련하게 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1875 ~ 19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1875 ~ 1926)

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낸 후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하였다. 프라하·뮌헨·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썼다. 본명은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였으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의 조언에 따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14세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를 '운명적으로'만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련한 향수,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 이름은 그야말로 시인의 대명사다. 세계인에게 가장 많은 애송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구슬 굴러가는 것 같은 유성음으로 이루어진 이름만으로도 릴케는 시인답다. 릴케를 불멸의 시인으로 키운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의 만남은 그중 각별한 것이었다.

1897년 5월 12일, 뮌헨의 소설가 야콥 바서만의 집에서 열린 다과 모임에서였다. 젊은 시인 르네 마리아 릴케(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아명)는 당대 멋진 여성의 대명사였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자마자 사랑의 거센 폭풍에 휘말려 들어갔다.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아니 그러기 때문에 그녀는 릴케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여인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분방한 정신세계는 또한 릴케의 젊은 열정과 만나 불꽃을 튀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나자마자 릴케의 가슴은 루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이룩한 정신적 도약.
 

릴케에게 루 살로메(이하 릴케가 그렇게 불렀듯이 ‘루’라고 쓴다)가 각별했던 것은 그가 한 해 전에 읽은 그녀의 에세이 덕분이기도 했다. 루의 에세이 <유대인 예수>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릴케는 익명으로 그녀에게 몇 편의 시를 우송하기도 했다. 이제 그녀를 실제로 만난 릴케는 “친애하는 부인, 당신과 내가 보낸 어제의 그 황혼의 시간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짧지만 달콤한 편지를 썼다.

작가들이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애정을 표시하는 고급 독자를 쉬 뿌리치지 못하는 법. 그녀의 에세이와 함께 했던 각별한 시간을 추억하는 젊은 시인에게 루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릴케는 “(당신의 에세이를 읽던) 그 황혼의 시간에 나는 당신과 단 둘이서만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 사이는 급진전되어 금세 연인 사이가 된다.

단순한 애정관계로 시작했지만, 릴케에게 루는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반려였다. 그녀는 릴케에게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모성적인 사랑의 제공자였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데 미숙한 시인에게 현실적인 길을 안내하는 정신적 후원자였다.

두 사람은 함께 공부하고 몇 차례에 걸쳐 여행을 떠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루는 릴케에게 프리드리히 니체(니체가 루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의 사상을 알려주었으며, 러시아 문학을 소개했다.
 

그녀를 만난 후 릴케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째,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었으며, 둘째, 그의 서체가 변했다. 1897년 빈의 한 잡지에 릴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쓰게 되는데, 바로 루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릴케는 줄곧 이 이름을 쓰게 된다. 그 동안 릴케는 상업세계에서 주로 쓰이는 비스듬히 종이를 스치는 듯한 필체를 썼는데, 루를 만난 후에는 우아하고 유연한 루의 필체와 비슷하게 바뀌었다. 릴케의 시 세계도 더욱 원숙해져, 그는 이 무렵 초기시의 미성숙한 단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여자옷 입고 자란 유년, 군사학교에서의 참담한 청소년 시절


어린 시절의 릴케는 불우하다거나 가난하다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결핍을 경험해야 했다. 칠삭둥이로 태어났다는 것부터가 결핍이라면 결핍이었다. 릴케는 1875년 12월 4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제프 릴케는 장교로서 입신을 꿈꾸었으나 실패하고 제대하여 하급관리가 되었다.

허영심 강한 어머니 피아 릴케는 남편의 출세길이 가로막히자 결혼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릴케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어머니는 자신이 결혼하여 처음으로 낳은 딸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죽은 딸을 잊지 못한 어머니는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옷을 입고 자라야 했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릴케는 따뜻하지 않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게 된다.
 

어머니의 양육은 섬약한 시인의 감수성을 타고난 릴케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다. 1886년 릴케는 장크트푈텐 육군 유년학교에 입학했다. 감수성 예민한 소년에게 어린 시절부터 군사교육이라니, 릴케 스스로 가장 참담한 시기였다고 말할 정도로 군사교육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군대의 공포는 나중에 40대에 입대함으로써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나마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의 의욕을 느꼈다.


1890년 육군 유년학교를 마친 뒤에 메리슈-바이스키르헨 육군 고등실업학교로 진학하지만 결국 병 때문에 그만둔다. 이어서 3년 과정의 상과학교에 들어가지만 역시 포기한다. 나중에 프라하 대학과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예술사, 문학사, 철학, 법학 등을 공부했다. 릴케의 학창시절은 시인의 길을 가는 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대학에서 닦은 인문학적인 소양은 훌륭한 산문을 쓰는 밑거름이 된다.


창조적 직관의 힘으로 완숙기엔 '사물시'의 진풍경 펼쳐


릴케의 문학이 처음부터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독학하다시피한 문학청년 시절에 첫 시집을 냈으니, 미숙할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청소년기에 두각을 나타낸 아르튀르 랭보 같은 천재는 아니었다.


릴케가 처녀시집 <삶과 노래>(1894)를 낸 것은 18세 때였다. 첫 시집을 비롯하여 루 살로메를 만나기 전까지의 시들은 원숙기 시들에 비하면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격정을 숨기지 않는 청년의 감수성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루 살로메를 만난 후 러시아 여행 등을 거쳐 인식의 지평을 넓힌 릴케의 문학은 바야흐로 날개를 달게 되었다. 이 시기에 씌어진 <기도시집>(1905년 출간)은 1899년, 1901년, 1903년, 세 차례에 걸쳐 한 부씩 창작함으로써 완성된다.

‘기도서’를 문학적으로 수용한 이 시집은 자신의 시 창작이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치열성을 담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멀리 있는 존재인 신을 향한 끝없는 날갯짓임을 웅변하였다. 이 시집을 펴냄으로써 릴케의 문학은 평자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형상시집>(1902)과 <신시집>(1907)은 릴케 문학의 또하나의 궤적이다. 사물과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바라보기’가 릴케의 미학적 성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신시집>의 이른바 ‘ 사물시 ’는 대상을 응시하는 시인의 감각적 관찰이 오롯이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무렵 로댕과 함께 일하면서 질료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내는 조각의 세계가 시인의 창조적 직관 속에서 독특한 진경을 창출해낸 것이었다.
 

스치는 창살에 지쳐 그의 눈길은
이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
그 눈길엔 마치 수천의 창살만이 있고
그 뒤엔 아무런 세계도 없는 듯하다.

아주 조그만 원을 만들며 빙빙 도는,
사뿐한 듯 힘찬 발걸음의 부드러운 행보는
하나의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있는
중심을 따라 도는 힘의 무도(舞蹈)와 같다.

가끔씩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 없이
걷히면 형상 하나 그리로 들어가,
사지의 긴장된 고요를 뚫고 들어가
심장에 이르면 존재하기를 그친다.
-「표범—파리 식물원에서」 전문(김재혁 역)



저승의 신 하데스도 감동시킨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꿈꾸다.


소설 <말테의 수기>도 릴케 문학의 완숙기에 창작된 중요한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에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수기 형식으로 담은 이 소설은 릴케의 문학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릴케는 순수 유미주의 미학보다는 샤를 보들레르나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정신에 자극받아 ‘문둥이 옆에 눕는 것’, 현실 문제를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릴케 문학의 정점은 <두이노의 비가>(1923)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3)이다.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김재혁 역)라고 시작되는 첫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비장한 목소리의 파도 속에 휩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리 탁시스 후작 부인이 제공한 ‘두이노 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이 시는 당시 교류했던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비견될 만한 ‘생의 약동’에 대한 웅대한 찬양가이다. 무용수 베라 오우카마 크노프를 위해 쓴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진정한 사랑의 노래로서 시인 릴케의 꿈을 보여주는 시이다.
 

시인은 스스로 오르페우스가 되어 에우리디케가 된 크노프를 향한 구원의 노래를 부른다. 삶에 발을 둔 지하 세계의 방문객이었던 오르페우스, 저승의 신 하데스도 감동시킨 그의 노래야말로 시인의 꿈이었음을 보여주는 시라고 하겠다.


결혼생활은 잠깐의 꿈 - '사랑을 찾아'많은 여인들을 만난 한평생


릴케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여인들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여인들과의 관계를 일일이 거론하기는 힘들다. 그의 여인들이 릴케와의 관계를 고백한 회상록들만 해도 꽤 여러 종이다. 루 살로메는 물론이고, 피아니스트 마그다 폰 하팅베르크, 출판업자 카타리나 키펜베르크, 화가 루 알버트 라자르트 등이 회상록을 남겼다.
 

릴케의 여인들에 대한 볼프강 레프만의 분류는 재미있다. 그에 따르면 릴케의 여자는 항성과 유성 같은 혜성으로 나뉘는데 루 살로메, 카타리나 키펜베르크, 마리 탁시스 부인이 릴케의 생애 내내 사라지지 않은 항성이라면, 마그다 폰 하팅베르크, 루 알버트 라자르트, 화가 발라디네 클로소프스카는 잠깐 스쳐간 유성 같은 혜성에 해당한다. 릴케가 이렇게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은 것은 정신적인 연인 루 살로메가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의 분위기였던 면도 있다.


또 하나 슬픈 여인을 소개해야 한다. 릴케의 아내인 화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이다. 그들은 1901년 4월 28일 혼인했고, 같은 해 12월 12일 딸 루트를 낳았다. 이 무렵만 해도 릴케는 보헤미안적 생활을 버리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결혼생활 직후 릴케는 자신의 일에 매우 충실했다.


심지어는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 식사할 때는 창을 통해 들여온 음식을 서재에서 먹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생활을 구축하려던 릴케의 계획이 차츰 실패했다는 것이 확실해진 1902년부터 릴케와 처자식은 서로 만날 기회가 드물어졌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가시를 감춘 아름다운 생애를 벗어던지다.


시인의 운명은 생각보다 일찍 저물었다. 릴케는 1923년 발병하여 몸져눕게 된다. 그때 이미 백혈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장미 가시에 찔린 적은 있었다.
 

1926년 9월 릴케의 여행을 도와줄 이집트 여인 니메트 엘루이가 찾아왔을 때 그녀를 위해 장미를 몇 송이 따주다가 그만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다친 것이었다. 백혈병 때문에 상처가 쉬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1926년 12월 29일 새벽,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원인은 백혈병이었다. 이듬해 1월 2일 키펜베르크 부부, 레기나 울만, 난니 분덜리 폴카르트, 베르너 라인하르트, 루 알버트 라자르트,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라롱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릴케의 유언에 따라 다음 시구가 새겨졌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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