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5] 이승하의 "죽기 전에 먹고 싶었던 것"
죽기 전에 먹고 싶었던 것
이승하
폐결핵에 걸리면 시한부 인생이 되는 것
다 죽어가면서도 펜을 잡고서
김유정, “닭과 구렁이를 고아 먹어야겠다.”
이상, “레몬을 구해다 주오.”
이빨로 대충 씹어 꿀꺽 삼키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
그대들 그토록 먹고 싶어 찾았건만
못 구했다 못 먹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끔 해주신
콩죽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먹고 싶다
아내가 해놓으면 식구들 중 나 혼자만
퉁퉁 불어터질 때까지 먹는 콩죽
나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어머니가 해주신 바로 그 콩죽의 맛
맛보고 싶다 구수한 콩죽 먹으며
스르르 잠들고 싶다 영원한 잠, 편안한 잠을
먹고사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있으랴
구걸해서라도 먹어야 사는 법
돌아서면 입은 아 배고파 소리치고
위장은 꼬르륵 맞장구를 친다
시는 배가 고파야 나오는 것이거늘
나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으며, 배부르게 먹으며
죽기 전에 그대들 먹고 싶었던 것
먹지 못하고 죽어 목이 메는 절명이다 단명이다
*김유정(1908〜1937), 이상(1910〜1937)
―『사람 사막』(더푸른, 2023)

[해설]
그 시절의 질병과 궁핍
그 시절에는 잘 먹지를 못했다. 한 끼 밥이라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이 이상과 김유정뿐이었을까. 폐결핵에는 약도 없었지만 잘 먹지를 못했으니 시한부 삶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한국 문학사의 명작들을 기침을 콜록콜록 해가면서, 때로는 피까지 토해가면서 썼다. 배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을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을, 이상의 시와 소설과 수필을 평상심으로 읽을 수 없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썼을까. 그 당시엔 폐결핵 환자로 판명이 나면 10년 이내에 죽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언제 저승사자가 방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을 횃불로 삼아 원고지와 씨름을 했다. 거의 필사적인 용기와 가학에 가까운 열정으로 쓰고 또 썼으니 몸이 견뎌낼 수 없었다. 스물아홉, 스물일곱의 청춘은 그렇게 갔다. 그 엄청난 작품들을 써놓고.
글이 잘 안 씌어질 때나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스산할 때면 김유정과 이상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글을 썼는데 나는 지금 이 무슨 태만인가. 핑계인가. 자만인가. 신춘문예 시상식장에 못 오신 소설가 송영 선생님을 인사차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 자기는 작품이 잘 안 되면 (젊었을 때였지만) 벽에다 머리를 쾅쾅 박곤 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 각오로 써야 한다. 쓸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