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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43] 박현덕의 “겨울 운주사”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존재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작은 떨림”

겨울 운주사

 

박현덕

 

그 오촉 전구 같은 눈 내린다 산지 절집

대웅전 추녀의 끝 금탁도 흐물흐물

길 잃은

바람을 불러

목 울대를 세운다

 

골짜기로 흩어진 천 개의 바람소리

꾀죄죄한 불상들 몸뚱이 피가 돌게

적막 깬 소리 사이를

흰 새가 날고 있다

겨울 운주사 [사진 : 화순군청 홈페이지]

박현덕의 「겨울 운주사」는 침묵과 울림이 교차하는 겨울 산사의 풍경을 통해, 쇠락과 생명의 긴장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운주사는 천불천탑 설화로 알려진 공간이지만, 시 속에서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의 깊이를 품은 상징적 장소로 재탄생한다. 눈 내리는 산지 절집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비어 있는 정적이 아니라 무엇인가 울리기를 기다리는 응축된 침묵이다.

 

오촉 전구 같은 눈이라는 비유는 자연의 눈을 인공의 불빛과 겹쳐 놓으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희미한 전구처럼 내리는 눈은 산사를 밝히면서도 동시에 쇠락한 빛을 암시한다. 이는 세월 속에 빛이 바랜 불상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신성조차 시간의 풍화를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어 금탁도 흐물흐물이라는 표현은 단단해야 할 금속이 힘없이 풀어지는 듯한 감각을 준다. 그러나 바로 그 유연한 흔들림 속에서 울림의 가능성이 태어난다. “길 잃은 바람을 불러 목 울대를 세운다는 구절은 침묵 속에 갇힌 소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를 형상화한다. 운주사는 이때 거대한 목구멍처럼, 바람이라는 영혼을 받아들여 울음을 준비하는 존재가 된다.
 

둘째 수에서 천 개의 바람소리는 천불의 형상과 겹쳐 다성적 세계를 이룬다. 흩어진 바람은 흩어진 기도이자 세월의 잔향이다. 특히 꾀죄죄한 불상들 몸뚱이 피가 돌게라는 표현은 돌에 생명의 혈맥을 부여하며 정지된 존재를 살아 있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낡고 초라해 보이는 불상들 속에서 오히려 생의 순환이 감지되는 것이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내부에서 피를 돌게 하는 응축의 시간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마지막의 흰 새는 이 긴장을 완성하는 상징이다. 적막을 깨는 소리의 틈을 가로지르는 새는 초월과 해탈의 이미지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가벼운 숨결이다. 앉아 있는 불상과 날아오르는 새의 대비는 정지와 운동의 긴장을 이루지만,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과 소리, 돌과 생명은 서로를 비추며 공존한다.

 

결국 이 시는 겨울 산사의 차가운 풍경 속에서 미세한 진동을 길어 올린다. 흐물흐물한 금탁과 길 잃은 바람, 피 도는 불상과 날아오르는 흰 새는 모두 존재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작은 떨림을 상징한다. 그 떨림이야말로 「겨울 운주사」가 보여주는 서정적 긴장의 본질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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