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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4] 김명숙의 "고강동 이야기"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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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동 이야기

 

김명숙

 

고강동에 산 지 삼십여 년

잠깐 머무르다 간 사람들과는

비대칭을 이룬다

 

재건축을 꿈꾸던 동네는

건축업자와 중개업자가 머리를 맞대자

천경아파트가 삽시간에 허물어져 내리고

주민들은 오랜 추억을 달에 안기고

썰물 나가듯 마을을 빠져나갔다

 

단독은 빌라가 되고

빌라는 알파벳을 머리에 두르자

여기가 어딘지를 몰라

새들은 갸우뚱거리며 돌아다녔다

 

초등학교 교실은 비어가고

갓난아기 울음이 들리지 않는 대신

유모차에 실린 강아지의 행렬이 이어질 때면

공원의 참새들은 혀를 차며

입을 모아 입방아를 찧었다

 

떠날 자들은 떠나가도 나는 이곳에 남아

구름 속에 비친 햇살 사이로

무지개를 쏘아 올리겠다

 

―『내 마음의 실루엣』(문학의전당, 2022) 

고강동 이야기_김명숙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옛날 동네, 그 사람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도 예전 같지 않나 보다. 특히 서울시와 경기도는 어딜 가나 인구 밀집 지역이라 오래된 동네나 낡은 집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건축업자와 중개업자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면 오래된 천경아파트는 삽시간에 허물어져 내린다. 아마도 지금은 1, 2, 3, 4차 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것이다. 그 동네에서 오래 정붙이고 살던 이른바 토박이들은 자기 동네가 고층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을 좋아할까? 이권, 차액, 입지, 매물, 상권…… 이런 낱말보다 인정, 덕담, 대화, 이웃, 미소 같은 낱말을 더 좋아하는데, 내가 촌놈이기 때문일까? 24시간 편의점의 깔끔함보다 구멍가게 앞 평상을 더 좋아하는 것도 촌놈이기 때문이리라.

 

  김명숙 시인은 이 시뿐만 아니라 여러 편에 걸쳐서 고강동 이야기를 한다. 집집이 다 낡은 이 동네에 30년 이상 살면서 단독주택이 빌라가 되고 빌라가 이상한 서양 이름의 아파트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세상은 더욱더 편리해지고 어떤 경우엔 으리으리해지고 휘황찬란해진다. ‘개발건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세상을 향해 막 휘두르는 동안 돈, , 돈이 쌓인다. 그 사이에 초등학교 교실은 비어간다. 아이들에게 ‘2부제 수업조회 시간에 졸도한 학생얘기를 해주면 믿을까?

 

  시인이 고강동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네 낡은 집들이 다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되면 시인도 어쩔 수 없이 아래, 위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되지 않을까. 집의 아이가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면 찾아오는 아래층 사람이 있어 결국 이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시인의 소망은 구름 속에 비친 햇살 사이로/ 무지개를 쏘아 올리겠다는 것인데 그 소망은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살았던 동네에서 계속 사시기를 바라지만…….

 

  [김명숙 시인]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제1회 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가곡, 동요 작사가이기도 하며 작품으로 가곡 「달에 잠들다」 외 45, 동요 「새싹」 외 80곡이 있다. 5회 오늘의 작가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도전한국인대상(문학 부분), 부천예술상, 방송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사회교육 강사, 방과 후 강사. 시집으로 『그 여자의 바다』가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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