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 인구 절벽과 AI 격변, 새로운 사회계약
대한민국은 지금 두 개의 거대한 쓰나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인구 절벽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 격변입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의 문법 자체를 다시 써야 할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첫 번째 파도는 인구 절벽입니다. 2024년 합계출산율 0.75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OECD 평균 1.5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수치는, 한 세대가 지나면 대한민국의 생산연령인구가 지금의 60%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72년 한국의 총인구는 3,6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하며, 노인 부양비율은 현재의 세 배를 넘어섭니다. 국가의 대사 자체가 멈춰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파도는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불러온 기술 격변입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2030년까지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노동자가 자동화로 직무 전환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로, 이 충격을 어느 나라보다 정면으로 받게 됩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느릴 때, 그 간극에서 가장 먼저 내몰리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하층부입니다. 양극화는 이미 구조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두 파도가 동시에 밀어닥칠 때, 과거의 문법은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성장하면 분배된다는 낙수효과의 논리도,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산업화 시대의 신화도 이미 그 유효기간이 끝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개인 간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하는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국적은 이제 '운명'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인구 감소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과 개인 위상 사이의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적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는 거부 불가능한 운명'이었습니다. 국가는 징병과 납세,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절대적 지위를 가졌고, 개인은 그 틀 안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인구 급감은 이 구도를 완전히 역전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이미 가시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20년 숙련 이민법을 제정해 비EU 국가 출신 숙련 노동자에게 이민 경로를 대폭 개방했습니다. 캐나다는 익스프레스 엔트리 시스템을 통해 연간 40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아랍에밀리트는 '골든 비자' 제도로 전문 인재와 투자자에게 장기 체류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포르투갈과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로 원격 근무 인구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인재 유출을 방치한 국가들의 결말은 냉혹합니다. 홍콩은 2020년 이후 국가보안법 시행과 함께 전문직 고학력 인구 약 10만 명 이상이 순유출되면서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역시 팬데믹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인구 유출을 기록하며 경제 성장의 발목이 잡혔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핵심 명제가 도출됩니다. 국적은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며, 개인이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최적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하나의 삶의 단위'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글로벌 고학력 청년층을 중심으로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계산하는 문화는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조용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습니까?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가능하다면 이민을 고려하는 나라가 과연 글로벌 인재 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지금 당장 직시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기본사회 현금과 서비스의 정밀한 이중 구조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재들이 찾아오고 머물고 싶어 하는 국가는 어떤 사회를 설계해야 할까요. 그 해답으로 기본사회'라는 구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먼저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본사회는 단순히 '돈을 더 나눠주는'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기존의 복지 담론이 현금 이전에 집중해왔다면, 기본사회는 현금과 서비스의 정교한 이중 구조 체계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첫 번째 축,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논거는 토지, 데이터, 탄소권 등 이른바 공유부(共有富, Common Wealth)'에서 출발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부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창의성이나 노동이 아니라, 수십 년간 사회 전체가 축적한 데이터와 인프라, 공적 R&D 투자 위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누리는 디지털 플랫폼 독점 이익, 불로소득적 성격의 토지 가치 상승분, 그리고 탄소세 수입 등을 재원으로 삼아, 이 사회적 자산에서 발생한 이익을 시민에게 배당으로 돌려주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이 석유 수입의 일부를 주민 배당으로 지급해온 것,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수급자의 정신건강과 고용 의욕 모두를 향상시켰음을 실증한 것은 이 방향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아울러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구체적 장치를 통해, 한국의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핵심 산업의 성장 과실이 일부 대주주와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국민 전체에게 주식 배당 형태로 분배되는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는 대립 관계가 아닙니다. 성장의 과실이 구성원 전체에게 공정하게 돌아갈 때, 오히려 내수가 살아나고 사회적 신뢰가 쌓이며 성장의 동력이 지속되는 선순환이 형성됩니다.
두 번째 축, 4대 기본서비스는 현금만으로는 삶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아무리 충분하더라도, 집을 구하는 데 소득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고, 한 번의 중병으로 가계가 파산하며, 자녀 교육비 때문에 노후 저축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불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본사회는 주거·돌봄·의료·교육이라는 4대 핵심 영역에서 서비스 차원의 공적 보장을 병행합니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현재 8% 수준에서 북유럽 수준인 20~25%로 확대하고, 노인과 아동 돌봄 인프라를 국가 책임 하에 재편하며,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를 강화하고, 대학 등록금 무상화 혹은 소득 연동 상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그 핵심 내용입니다.
이 4대 서비스의 공적 보장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닙니다.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창업에 도전하거나, 직업 전환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거나, 출산과 양육을 결심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안전망'이 됩니다. 덴마크식 유연안전성 모델이 노동 유연성과 사회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한 것은, 바로 이 서비스 차원의 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단계적 로드맵: 2027~2035
이 구상이 공허한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행 가능한 타임라인이 필요합니다.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1단계 준비기(2027~2028) 공유부 과세 체계(디지털세, 탄소세, 토지보유세) 정비, 국민성장펀드 법제화, 4대 기본서비스 파일럿 지역 선정 및 시행.
2단계 확산기(2029~2032)기본소득 단계적 도입(청년·노인 우선),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제 도입, 돌봄 국가책임제 전면화.
3단계 정착기(2033~2035):전 연령대 기본소득 통합 체계 완성, 4대 서비스의 보편적 권리화 법제화, 이민·귀화 정책과의 연동 체계 구축 입니다.
재원 규모에 대한 우려는 정당합니다. 그러나 OECD 최저 수준인 한국의 조세부담률(26%)을 EU 평균(4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높이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지출 구조조정과 디지털세·탄소세 신세원을 결합한다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 다수 재정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어떤 나라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떤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안전망이 부실하여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나라,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한 채를 가질 수 없다고 느끼는 나라, 한 번의 실패가 재기 불능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나라는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가장 먼저 도태됩니다. 그런 나라의 국적은, 선택받기는커녕 가능하다면 빠져나가고 싶은 '짐'이 됩니다.
반면 공유부에서 발생한 이익이 배당으로 돌아오고, 주거와 의료와 교육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나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신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나라는 전 세계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와 국적을 선택하는 강력한 국가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인도주의적 이상이기 이전에, 인구 절벽 시대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한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인 국가전략입니다.
역사적 전환점은 언제나 위기 속에 잉태됩니다. 대공황이 뉴딜을 낳았고, 전후의 폐허가 유럽 복지국가를 탄생시켰습니다. 인구 절벽과 AI 기술 격변이 동시에 몰아치는 지금,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절벽 아래로 무너지지 않는 사회', 기본사회의 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세대의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