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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게 죽음이란 두렵지 않아!  죽는 역할을 받은 거야 ! _이주실
사람들

배우들에게 죽음이란 두렵지 않아!  죽는 역할을 받은 거야 ! _이주실

김경원 기자
입력
수정2025.02.06 09:54
이주실과 윤석화 그리고 <덕혜옹주> _ 故 이주실 배우의 숨은 얘기  

이주실(81) 선배가 올해 설날의 긴 연휴가 끝나자 저 세상으로 떠났다. 배우 윤석화도 투병중이라는 소식이다.

 

위 배우들과 나는 1995년부터 인연이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현대일본희곡 10(1)(2)>(1991 1995 예술기획 간행. 국내최초 일본희곡집) 번역을 했던 내게 일본연극 기획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덕혜옹주라는 연극이 일본으로 공연하러 오는데, 일본어 자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덕혜옹주!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황제의 독살을 목격했고, 13살에 ‘내선일체’라는 명목 하에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10대 시절을 보냈다. 이후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 이상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며 한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낯선 이국 땅에서 37년 동안 유령처럼 떠돌았다. 저작권:구글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덕혜옹주!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황제의 독살을 목격했고, 13살에 ‘내선일체’라는 명목 하에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10대 시절을 보냈다. 이후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 이상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며 한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낯선 이국 땅에서 37년 동안 유령처럼 떠돌았다. [사진 저작권:구글]

그래서 1995년 제2Beseto연극제 <덕혜옹주>(:정복근 연출:한태숙 출연:윤석화 이주실 한명구 원근희 강신일 한상미 심영민 명로진 조주현 등) 대사를 일어로 번역, 자막으로 만들어 공연현장에서 자막연출을 했었는데, 이 때 만난 배우들이 이주실과 윤석화였다.

 

자막 연출이란, 무대에서 연기하는 한국 배우의 한국어 대사를 들으며 일본어로 자막을 내보내는 타이밍을 지시하는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연극 공연장에서 일본어 자막을 내보내는 일은 없었기에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연극무대 위에서 주인공 윤석화와 이주실의 조연으로서의 연기는 빛났다. 그들 덕분으로 성공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다.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쌍코랑말코랑 이별연습’을 공연했던 이주실. 1인극으로 만들어 본인의 암판정을 세상에 고백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관련기사. 신문사진 右에서 두 번째-글쓴이(김경원). [사진저작권:김경원]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쌍코랑말코랑 이별연습’을 공연했던 이주실. 1인극으로 만들어 본인의 암판정을 세상에 고백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관련기사. 신문사진 右에서 두 번째-글쓴이(김경원). [사진 저작권:김경원]

뒷풀이 식당에서 윤석화(덕혜옹주 역)와 열연을 했던 한명구(소 다케유키 역)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도중에 느꼈다. 한국공연 땐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았던 장면들에 대해 관객이 놀랍게도 호응들을 해주었다. 아마 일본어 자막의 힘이었던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공연이 끝난 직후, 극장 로비에서 연극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60대 여성 두 명이 날 찾는다고 했다. 도쿄 근처 이바라키(茨城)와 도치기 현(栃木 縣)에서 왔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요. 우리 동네 어른들이 그랬죠. 조선의 왕족 여성이 왜 여기에 살고 있는 지 어린 나이에도 좀 이상하다 여겼어요. 그녀는 커다란 집에서 살고 있었지요.”

 

“그럼, 그 여성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다급히 묻는 내게 그들이 답했다.

 

“네에~ 대문 밖으로 나온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있어요. 햇볕을 통 안쬐어서였는 지, 얼굴이 아주 창백했었지요. 이번에 공연안내 기사를 보고, 혹시 그 여성일까 싶어 멀리서 이 공연을 보러 온 겁니다.”

 

통역하는 나를 쳐다보며 듣고 서있던 배우 한상미가 감정이 격앙되어 울음을 터뜨렸다.

 

“맞을 겁니다. 그 분이 덕혜옹주이십니다!”

 

이 연극 <덕혜옹주>에서 한상미는 덕혜옹주의 일본하녀 역을 연기했다.

 ‘덕혜공주’ 일본공연을 다 마치고, 서울 가는 국제공항으로 배웅하던 중, 이주실은 리무진 버스안에서 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은 아직 아무에게도 안했다. 실은 얼마전 유방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일본을 떠나며 내게 남기는 충격적인 선배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으나 나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최근 암판정을 받았던 일본 여배우가 있는데, 오히려 더 잘 나갑니다. 선배님도 용기를 내시고 그 얘기를 연극으로 하세요. 제가 쓸께요.”

 

그 후로부터 1년이 지난 96년 11월 이주실은 본인의 암투병 이야기를 대학로 인간소극장에 1인극 <쌍코랑말코랑 이별연습>(연출: 故박용기) 으로 만들어냈다.

 

언젠가 이주실 선배가 환히 웃으며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우리 배우들에게 죽음이란 두렵지 않지. 죽는 역할을 받은 거라 여기고 그런 연기를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글: 김경원 배우/ KAN 연예 전문기자)


 * 이주실은 따뜻한 모성애를 떠올리는 배역을 주로 맡아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연기로 사랑을 받았다. 2023년에는 영화 ‘오마주’로 제10회 들꽃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한국방송(KBS2) 주말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 순정 역으로 출연했다.  2024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황준호(위하준)의 어머니 역으로 열연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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