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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49 】임영숙의 "환생이라 불린"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환생이라 불린

- 위패 봉안식에서

 

임영숙

 

하루가 쌓여있는 화성의 벽을 따라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 사람

고통의 노동 속에도

영원한 이별은 없지

 

환생하는 의식 속에 위패를 모시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도목수 오랜 지혜

안과 밖 이어온 사이

그 길이 넓어질 뿐

 

바라 든 무상의 춤

티 없는 꽃 바라는가

서녘의 구름 사이 빛살이 내리고

바람 속 흔들린 깃발 그 혼이 다녀간 듯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억 속 겁의 시간

위로와 평안에서 다시 만날 생이던가

바라춤 옷깃 사이로 가신님이 걸어온다

 

《나래시조》 (2025.겨울호) 

환생이라 불린/임영숙사진:임영숙
환생이라 불린/임영숙[사진:임영숙시인]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일도 굉장한 일이지만 시간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의 도목수를 만나 그 지혜를 안다는 것 또한 굉장한 일이다.

 

하루가 쌓여있는 화성의 벽을 따라/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 사람화성은 조선 시대 정조가 자신의 부친인 장현세자의 묘를 옮기며 신도시와 방어의 목적으로 쌓은 성곽이다.그 곳에는 석공,목수,미장 일을 하던 장인들과 돌과 나무를 나르던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가 쌓여 있다.하루는 노동이고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생()의 단위다.온몸을 국가와 왕조를 위해 자신을 연료로 태워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통의 노동 속에도/영원한 이별은 없지단절을 부정하는 불교적 세계관이다.고통의 노동은 업()이며 이것은 몸을 통해 감당해야하는 생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환생하는 의식 속에 위패를 모시면서/현실을 직시하는 도목수 오랜 지혜이 시는 위패를 한 지점에 놓으면서 도목수의 지혜가 다시 깨어나는 계기가 된다.여기서 환생은 육체적 귀환이 아니라 의식이다.불교에서 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흐름이다.도목수의 지혜는 공()에 가깝다.벽을 쌓았지만 벽에 갇히지 않고 안과 밖을 구분하되 그 사이를 막지 않는다.이것은 분별을 알되 분별에 머물지 않아 그 지혜의 길이 넓어짐을 말한다.

 

바라 든 무상의 춤/티 없는 꽃 바라는가노동은 끝났고 이름도 사라졌지만 혼은 남아 있다.무상(無上)은 불교에서 지극히 높은 경지를 말한다.한 손에 하나씩 바라를 들어 두 짝을 마주치며 추는 춤 사이로 티 없는 꽃은 우리의 바람이고 빛은 잠깐이며 깃발은 흔들린다.어느 것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그러나 이 짧은 순간들이 겹쳐질 때 그 혼이 다녀간 듯한 지나간 인연의 파문들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 수는 망자를 직접 부르지 않는다.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다.대신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존재의 흔적이 감지될 뿐이다.시간은 직선이 아니다.과거는 끝나지 않았고 위로와 평안의 봉안식은 그 겁을 다시 여는 행위다.춤추는 옷깃 사이 가신님이 걸어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기록 속에서 환생처럼 다시 태어날 것이다.

 

「환생이라 불린」은 봉안식이라는 구체적 의례에서 출발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다만 언어로 옮겨와 하나의 봉안식이 된다.독자는 읽는 순간 참여자가 되고 애도자가 된다.뿐만 아니라 노동의 시간을 층위적 시간으로 쌓아올려 기억 속 겁의 시간으로 재탄생하게 만든다.결국 이 시는 계속 봉인되고 다시 읽히며 환생하는 구조를 가져오는데 그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원 화성의 벽은 돌로만 쌓여있지 않다.그곳에는 불리지 못한 이름들,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숨결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그 숨결의 층위 위에 존중받아야 할 그들의 삶을 꺼내 들여다보는 오늘이다.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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