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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7] 김신용의 "양동시편陽洞詩篇 2 ―뼉다귀집"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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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시편陽洞詩篇 2

―뼉다귀집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 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여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뼉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

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클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무크지 『현대시사상』 1(1988)  

양동시편 _ 김신용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김신용 시인 편히 잠드소서

 

  115일에 81세를 일기로 작고한 김신용 시인의 등단작 중 한 편이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었기에 공장에 취직도 안 되어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전전했다. 일용직 노동자로서 건설현장 잡역부를 한참 했고 역이나 터미널 앞에서 지게꾼, 리어카꾼 같은 짐꾼으로 연명했다. 김신용 시의 공간은 무허가 판자촌, 역전 매음굴, 양동 빈민촌, 쌍문동 아파트 신축공사장, 남대문 인력시장, 감방 마룻바닥, 뱃길 막힌 소래 포구 등 자신이 살았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당을 번다. 장마가 오면? 일할 곳이 없어 한 주 내내 한 푼도 못 벌 때가 있다. 그럼 채혈병원을 찾아가 헌혈을 하고 빵과 우유를 받아 허기를 달랬다.

 

  그가 종종 허기를 해결했던 양동의 뼈다귀집을 사람들은 뼉다귀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집을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는가?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죽 나열한 직업군은 거의 다 자기가 해본 것이다. 날품팔이, 지게꾼, 부랑자, 쪼록꾼(매혈 행위를 하는 사람), 뚜쟁이, 시라이꾼(사기꾼), 날라리(실업자), 똥치(매춘부), 꼬지꾼(자해공갈단) 중에 안 해본 것이 거의 없다.

 

  198090년대 한국 사회를 연구하려는 후대의 사회학자가 김신용의 시집과 소설집을 읽지 않는다면 그는 이 사회의 전모를 파악치 못한 엉터리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등단 무렵부터 일관되게, 일용직 노동자를 비롯한 밑바닥 인생들의 절박한 삶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날카롭게 묘사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이름은 햇볕 좋은 양동이지만 실은 빈민굴과 사창가로 이루어진 곳―즉, 서울의 가장 음습한 곳, 혹은 암울한 곳이 바로 198090년대의 이곳이었으리라.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 군상의 삶과 꿈을, 아픔과 슬픔을, 치욕과 환멸을, 죄악과 처벌을, 사랑과 증오를 그는 실감나게 그렸다. 전국 방방곡곡, 소외되고 헐벗은 군상이 몸으로 때우며버겁게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어 시세계로 끌고 오던 그가 갔으니 이제 한국문학사의 한쪽이 비게 되었다.
 

  장편소설도 『고백』(1994, ‘달은 어디에 있나로 제목 고쳐 재발간), 『기계 앵무새』(1997)에 이어 『새를 아세요?(2014)를 냈는데 모두 시인의 체험이 상당히 반영된, 일종의 자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날 벌어 그 다음날을 사는 떠돌이 인생살이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기에 시집과 함께 읽으면 더욱 현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버려진 사람들』『개같은 날들의 기록』『몽유 속을 걷다』『환상통』『도장골 시편』『바자울에 기대다』『잉어』, 시선집 『부빈다는 것』 등을 발간했다. 천상병문학상, 노작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고양행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15일에 눈을 영원히 감았다고 하니 먼 나라에 가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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