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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빚고 시간을 새기다… 노복환 개인전 《기억의 결, 시간의 맛》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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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서예 인생이 빚어낸 삶의 기록, 어머니의 온기와 가족의 사랑을 예술로 승화하다

서울 삼청동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한 편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거대한 서예 작품과 한지를 겹겹이 쌓아 만든 화면들,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기억의 결이 공간 전체를 채운다.

노복환 개인전 포스터

노복환 작가의 개인전 《기억의 결, 시간의 맛》은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자,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삶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낸 서정적 서사다.

 

40여 년 동안 한문서예의 길을 걸어온 노복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서예가이자 현대미술 작가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필묵의 전통 위에 현대적 조형언어를 더해 기억과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노복환 作
노복환 作
노복환 作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초록, 붉은색, 노란색으로 구성된 대형 화면들은 멀리서 보면 단색 추상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한지와 고지를 수없이 찢고 붙인 흔적들이 촘촘하게 드러난다.

 

이 작업의 출발점은 의외로 소박하다.

 

작가의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손수 칼국수와 수제비를 만들던 풍경이 남아 있다. 반죽을 떼어내던 손길, 부엌을 가득 채우던 온기,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던 시간들이 세월이 흘러 작품 속 재료와 질감으로 되살아났다.

 

한지를 찢고 꼬고 붙이는 반복적 행위는 단순한 제작 과정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는 의식에 가깝다. 화면 위에 수없이 중첩된 흔적들은 지나온 삶의 시간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고, 세월이 남긴 감정의 지층이다.

 

노복환 작가는 "삶의 공간은 기억과 정서가 층층이 쌓여가는 흔적의 장소"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바로 그 흔적들을 한 장의 화면으로 되살리는 과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점은 전통 서예와 현대미술의 자연스러운 융합이다.

 

거대한 서예 작품은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필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다. 먹빛의 강렬한 필선은 세월의 무게를 품고 있으며,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관람객을 작품 앞으로 이끈다.

 

반면 추상적 화면들은 서예의 필획이 해체되고 재구성된 또 다른 형태로 읽힌다. 문자와 의미를 넘어선 흔적의 미학은 현대 추상미술과도 깊은 접점을 형성한다. 최근 발표한 신작에서는 채색을 최소화하고 한지와 고지 본연의 색감을 적극 활용했다. 자연스러운 재료의 물성이 살아난 화면은 화려함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더욱 깊은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노복환 作

전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가족이다.

노복환 作

작가는 세 명의 손자녀와 가족에 대한 애정을 작품 곳곳에 녹여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자신의 꿈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감사가 바탕이 되어 있다.

노복환 作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무겁거나 난해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부모와 가족의 얼굴을 기억하게 된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보편적인 공감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기억의 결, 시간의 맛》은 노복환이라는 한 예술가의 회고전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고, 시간은 모두에게 흐른다. 작가는 그 흔적들을 한지 위에 새겨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기억은 어떤 색과 결을 가지고 있는가."

 

40년 필묵의 시간과 가족의 사랑, 그리고 삶의 온기가 담긴 이번 전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따뜻한 예술적 초대장이다.

전시 전경

전시 개요
전시명 : 《기억의 결, 시간의 맛》

  • 작가 : 노복환
  • 기간 : 2026년 6월 18일 ~ 6월 28일
  • 장소 :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서울 종로구 삼청동)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작가 프로필

  • 개인전 7회 개최
  • (사)한국서예협회 이사장 역임
  • (사)한국서예협회 현 고문
  •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 외 다수 초대전
  • 국내외 갤러리 및 아트페어 다수 참가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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