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철, 장편서사소설 ‘섬진강’ 출간… 기억과 윤리의 강을 묻다
도서출판 현대시문학이 소설가 양태철의 장편서사소설 ‘섬진강’을 발간했다. 이번 작품은 “강은 기억한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하며, 섬진강을 단순한 자연이 아닌 기억의 주체로 설정한다. 강은 인간의 죄와 사랑을 동시에 비추는 윤리적 존재로서, 독자를 관찰자가 아닌 증인의 자리로 끌어들인다.

섬진강은 남원에서 발원해 구례·곡성·하동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물길이다. 그 흐름 속에는 수백 년의 노동과 전쟁,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양태철은 이 강을 따라가며 우리가 외면해온 역사와 개인의 상처를 조용히 호출한다. 작품의 핵심 질문은 “너는 너의 죄를 기억하느냐”이며, 이는 독자에게 깊은 윤리적 성찰을 요구한다.
기억의 지층으로서의 공간
곡성·구례·하동 등 섬진강 유역의 실제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의 지층으로 제시된다. 1950년대의 비극, 강 위에 띄워진 비단, 물결을 건너는 노래, 해마다 돌아오는 매화의 향기까지 지역의 역사와 개인의 내면이 맞물려 하나의 서사적 흐름을 형성한다. 작품 속에서 강은 법정이 되기도 하고, 제단이 되기도 하며, 모든 것을 품는 어머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양태철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나 울림은 깊다. 시적 언어와 소설적 긴장이 균형을 이루며, 서정과 서사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독자는 강을 따라 걷는 듯한 감각 속에서 어느 순간 멈추고, 어느 순간 깊이 잠기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흘러간 시간과 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양태철은 섬진강과 남해안 일대를 문학적 공간으로 삼아 기억과 시간, 존재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다. 시집 ‘몰래 찍은 사진 하나’, ‘바람의 말’, ‘붉은 등’과 소설 ‘드라이아이스’, ‘파랑새’, ‘내 안의 법정’, ‘바다가 온다’ 등을 통해 서정과 사유를 결합해왔다. 특히 희곡 ‘엄마의 손수건’에서는 여순사건을 다루며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이번 ‘섬진강’은 그의 문학적 궤적이 응축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섬진강’은 단순한 역사소설이나 서정소설로 규정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인간이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용서하며, 어떻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윤리적 서사다. 기억은 고통이지만, 기억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상실이라는 사실을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한다. 또한 한국어판과 함께 영문판 ‘Seomjin River’로도 출간돼 세계 독자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