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아카데미 ] 이지엽의 "해남에서 온 편지"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5] 사설시조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니 안, 쑥 한 바구리 케와 다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이지엽 시인의 말)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미지: 류우강 기자]
위 시조는 사설시조다.
IMF 시대에 남편을 여의고 딸마저 수녀가 된 뒤 홀로 살고 있는 노모의 혼잣말을 구수한 사투리로 엮어 놓은 시인의 시적 감성이 넘쳐보인다. 하고 싶은 말을 늘어 놓는 데는 사설시조가 제격이다. 가슴에 맺힌 것들, 차고 넘치는 속엣것들을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사설을 제대로 잘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모노로그(monologue) 형식의 시로, 주체가 어머니이며 화자의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다. 시 전체는 구어체(사투리)를 그대로 살린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술시로 생동감을 구현한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 부분은 한국 서정시 전통 속의 자연과 인간 교감을 환기시키며, 삶의 한가운데 피어난 순간적인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나눌 대상이 부재한 쓸쓸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목가적 이미지는 복사꽃처럼 작고 소박하지만 빛나는 서정적 클라이맥스 역할을 한다. 즉, 가장 아픈 현실 속에서도 자연은 피고, 그 자연을 통해 마음의 일부를 건네는 어머니의 정이 순수하게 드러난다.
# 사설시조는 편시조(編時調)ㆍ엮음시조(--時調)라고 이르던 것인데, 현대에 들어와서 그와 같은 명칭으로 이미 굳었다. 이른바 ‘사설(辭說)’이라는 용어는 ‘실속은 없이 사설만 늘어놓는다.’라고 할 때와 같이 ‘입말’을 뜻하고, 또는 ‘상간(桑間)ㆍ복상(濮上)의 음악은 사설이 음탕하다.’라고 할 때와 같이 ‘노랫말’을 뜻한다. 그러나 사설시조ㆍ사설방아타령 등을 일컬을 때는 그와 같이 일반적인 뜻만 지니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사설시조ㆍ사설방아타령 등을 일컬을 때의 이른바 ‘사설(辭說)’은 판소리 용어 ‘아니리’를 한자어로 바꾸어 놓은 말이다. 그것은 ‘창(唱)으로 하지 않고 아니리로 하는 부분에 걸치는 입말’을 뜻한다. 그러니 단순한 ‘입말’이 아니라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구연(口演)에 적합하도록 잘 엮인 입말’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사설시조의 ‘사설 엮음’과 판소리의 ‘사설 엮음’은 실제로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다. 양자는 물길이 굽이치듯 돌아드는 태세를 보이는 듯해도 어느덧 살 같은 속도로 비상한 분량의 발화를 한꺼번에 내질러 버린다. 이것을 눈으로 읽으면 늘어진 듯하여 매우 답답할 것이나, 들으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작시로 찾아올 예정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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