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숙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책 소개
서금숙 시인의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일상성과 구체적 이미지, 사회적 감수성과 내면의 응시를 결합하여 ‘부풀어 오르는 서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이 서정은 감상적 감정이 아니라, 고통과 기억, 시간과 사랑을 천천히 구워내며 얻어진 숙성의 산물이며, 그 과정을 통해 시인은 자신과 세계를 다시 응시하는 ‘시적 윤리’를 완성해 나간다. 그의 시들은 정주와 유랑, 고정성과 움직임 사이에서 진동한다. 시인은 반복된 일상과 기억, 사랑과 고통에 깊숙이 몸을 담그는 동시에 그로부터의 이탈을 꿈꾼다. 그의 서정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빵이 부풀 듯 서서히 발효되는 내면의 시간 속에서 확장되는 존재 인식의 기록이다. 일상의 사물과 장소-빵, 도서관, 산책 등-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며, 자아를 응시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 시집은 정주의 욕망과 탈주의 충동, 기억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감정들을 발효시키는 서정의 궤적을 보여준다.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경험들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고, 자아의 변화와 성숙을 ‘숙성된 빵’이라는 이미지로 구현한다.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말은 이 모든 내면적 숙성과 응시의 과정에서 도출되는 자기 인식의 결정이다.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 시집은, 일상 속의 언어와 정서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자아를 발견하는 실험의 장이자 시적 숙성의 기록이다.
목차
1부 흰 파도를 닮은 섬을 다 따오기를
속도 60/ 개밥바라기별/ 벽이 되어 버린 부인/ 시계꽃/ 정독도서관/
그리움은 길을 묻는다/ 봄 상자/ 여기, 덩굴빵을 드릴게요/ 아리가 건네준 초록 사과/
붐붐/ 올해도 파꽃이 피었습니다/강남 몽夢/ 백령도 따오기/ 오란비/ 팬닝
2부 달은 물방울을 피우는 꽃이 되었다
무너진 것들의 노래/ 모형 의자/ 라이브 공연 / 맥시칸모자꽃/ 감정의 거품/
홀로그램/ 첫잠/ 버려진 집/ 로드킬/ 벚나무 아래/ 노랑할미새의 모닝빵/
신자유주의 빵집/ 츄파춥스 신화/ 아버지의 외투/ 빈티지
3부 말이 글이 되고 말발은 뛰어간다
카오스의 딸/ 가방 안에는 낯선 길과 오랜 체온과/ 몸빵/ 엄마를 부르면 오는 달, 딸/
지금 우린 아름다운 한 폭의 기억이야/ 바람을 물고 오월이 피면/ 의/ 엄마의 무게/
시적 낭만/ 개똥 아비의 소원/ 후에야/ 크루아상은 울지 않는다/ 상황버섯/ 브레첼
4부 흰 목련이 터지기 직전처럼
바다를 타고 드는 잠/ 섬마, 설마/ 어이 어이/ 능이/ 뜨거운 공갈빵/ 블라인드/
사막의 시간/ 산토리니 저녁 석양 한 컷/ 시작과 詩作 / 완두은하/ 프록시마 b/
마장 호수/ 이스트의 꿈/ 이내/ 비단향꽃무/ 되풀이되는 별밤을 뒤적이며
해설 _ 안주와 탈주 사이에서 숙성되는 서정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서금숙
2019년 [시문학] 등단
2017년 부천신인문학상 시부문 수상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부천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문학석사
부천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책 속으로
우리가 고요히 마시는 우유는 사랑이다
이곳엔 고욤나무 그림자가 머문다
--- 「벽이 되어 버린 부인」 중에서
수확의 기쁨을 맛보고 싶은 어린 모종은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 된 지 오래다
--- 「시계꽃」 중에서
멜랑콜리를 흔들며 마음을 읽었다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 「정독도서관」 중에서
눈처럼 깨어난 페이로드 동굴 속에 남아 있던 아이가 탈출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향해 나아간다 손이 꽁꽁 얼어 터질 때 불덩어리 한 주먹을 호호 불면 꿈들이 자꾸 자란다
--- 「그리움은 길을 묻는다」 중에서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깊고 깊은 길을 지나면 내가 만든 달콤하고 폭신한 빵숲이 있다는 것을
--- 「여기, 덩굴빵을 드릴게요」 중에서
너는 원을 두려워했고
나는 그게 나의 과실이었다는 걸 알았다
초록 사과를 베어 문다
우울의 단면이 쪼개지는 소리가 난다
--- 「아리가 건네준 초록 사과」 중에서
오란은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지 못한 사람들
울지 못한 이름들
그들 모두가 오란이었습니다
--- 「오란비」 중에서
나는 햇빛에 중독될까 두려워
지나가는 비행기 굉음에 움츠러들며
의자에 살짝 기대면 꼬리뼈가 저릿했다
--- 「모형 의자」 중에서
더 작은 상자 속으로 실려 간 사람들
집에 매달린 믿음을 놓아 버렸다
?버려진 상자 안에 집은 없다
--- 「버려진 집」 중에서
노란 은행알이 굴러다니는 늦가을
유리의 혈통을 가졌던 누이가 입안에서 바스락 깨졌다
달은 칠흑의 우주를 삼키며 등을 돌렸다
--- 「츄파춥스 신화 」 중에서
기준이란
익숙한 얼굴들로 짜인
묵음의 합창이라는걸
--- 「섬마, 설마」 중에서
봄날 햇살이 붙어
흰 목련이 터지기 직전처럼
하루만 자고 나면 빵은 키가 자란다
--- 「이스트의 꿈 」 중에서
밥 짓는 손끝에서
아궁이 불꽃처럼
말이 피어올랐다
--- 「이내」 중에서
시인이라는 꿈을 꾸니
죽었던 세포가 하나둘 깨어났다
글쟁이가 되겠다고 구멍 난 주머니를 뒤지고
--- 「시작과 詩作」 중에서
안개를 받아먹던 작은 전갈처럼
나는 모래결을 따라 무언가를 쓰는 존재가 됐다
--- 「사막의 시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금숙의 시는 ‘살아내기’와 ‘떠나기’ 사이의 미묘한 진동 속에 있다. 그의 이번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정주의 규범과 유랑의 욕망 사이를 부유한다. 시인은 반복된 일상과 누적된 기억, 사랑과 고통이라는 익숙한 자리에 깊이 몸을 담그는 동시에, 그 자리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탈출을 감행하는 시적 화자를 내세운다. 이 시집은 낡은 공간과 그 안에 스며든 몸의 체취, 빵이 부풀 듯 숙성되는 감정의 시간 그리고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적 상상으로 가득하다. 서정은 단지 감상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이미지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확장되며 탈주를 위한 내면의 사유로 기능한다. 이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담과 집으로 대변되는 안주의 공간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탈주의 충동을 품고 있다. 마치 발효되는 빵처럼, 화자의 내면은 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점차 부풀어 오르며 자신만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이렇게 보았을 때 서금숙의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고정된 공간과 움직임의 욕망 사이에서 팽창하는 서정의 기록이다. 시인은 일상의 소재들 이를테면, 빵 굽기, 도서관 가기, 동네 산책하기 등을 통해 존재의 본질적 질문들을 던진다. 이 글 제목의 ‘숙성되는 서정’이란 말은 단순한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압축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발효되어 나오는 존재 의식의 팽창을 의미한다. 시인은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자신을 오래 바라보며, 그 응시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 나간다.
서금숙의 시집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안주와 탈주 사이에서 발효되는 서정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자는 집과 담장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공간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꿈을 품고 있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시간의 작용을 통해 점차 확장되고 깊어진다.
시인이 보여주는 이 ‘부풀려진 서정’은 인위적인 과장이나 감상적 몰입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서서히 발효되어 나오는 존재 의식의 자연스러운 팽창이다. 이런 숙성의 시간을 통해 시인의 정신은 무거운 현실을 딛고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향해 비상한다. “불꽃으로 남을 표징”을 남기고자 하는 「홀로그램」에서의 언표처럼 시인은 시가 실체 없는 이미지에 불과할지라도, 빛의 반사 속에서 진실을 남기고자 하는 시적 의지와 서정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금숙의 시는 안주와 탈주, 기억과 환상의 간극 사이에서 서정의 부풀림을 시도한다. 그것은 불안정하고 미끄럽지만, 언어를 통해 굽고 익히며, 삶의 질긴 감정을 건너는 숙성의 서정이다. 숙성된 빵이 마침내 완성되듯, 시인의 서정도 시간과 경험의 발효를 통해 고유한 향과 맛을 갖춘 성숙한 형태로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 서정은 다시 ‘나를 오래 바라보는’ 시선으로 되돌아온다. 이 과정은 자기를 안고, 다시 자기를 떠나는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시 쓰기의 궤도를 보여준다. 또한 이는 단순한 자기 성찰을 넘어서, 안주와 탈주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 수용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시집은 바로 그 가능성의 시험장이고 그 실험의 기록이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빛 드문 창가, 토마토 한 상자
하루를 더 두면
네가 말랑해질까 봐
나는 말이 많아질까 봐
물러지기 전에
상처 나기 전에
토마토를 조심스레 꺼낸다
초록이 익어가는 말들을 비로소 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