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여태천의 "묘비명"
[이승하의 시 한 편을 83]
묘비명
여태천
졸음처럼 날아드는 글자들
애인처럼 도망가는 글자들
뭐든 많으면 좋은 거라지만
말이 많으면 거짓말이라지.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지.
그런 말들은 언제나 무섭지만
친구여, 때가 되면 말할게.
저 많은 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때를 놓쳐 끼니를 걸렀을 때
몰빵하느라 길을 잃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죽듯이
생각 때문에 죽기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도 끝이 있겠지.
어디 끝이 없는 시간이 있을까?
울다 지치는 아이처럼
원수를 향한 분노도 지치고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도 지치고
죽음을 목전에 둔 두려움도 지치겠지.
그런데 왜 모든 유언은 길가에 버려진 우산 같을까.
심장을 문밖에 내걸어 두고
거리에서 간신히 덜어낸 한 컵의 통증
오도 가도 못 하던 몸의 글자들이 갇혀 있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자들
시간이 버린 글자들
안 보이면 더 생각나는
내 것인 줄 알았던 그렇지만 아닌 것들
이제 제발 거두어 가길
—『집 없는 집』(민음사, 2025)

[해설]
묘비명(epitaph)은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에 새긴 글귀다. 그가 고인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기막힌 문구나 그에 얽힌 미담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것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보이지 않는다. 묘비명을 연구하다간 제 명대로 못 살 수 있기 때문일까?
이 시에서 ‘생각’은 가장 주요한 시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죽듯이/ 생각 때문에 죽기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도 끝이 있겠지” 생각이 멈출 때, 생명의 시계도 멎는다. 호모 사피엔스. 생각을 집요하게, 아니, 과감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생각 없이 살아가면 안 되니까.
어떤 묘비를 보면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어 관심을 집중하기 어렵다. 몇 자가 안 되어도 죽은 이의 생애를 반추하면서 고개 숙여 묵념하고 싶은 경우가 있다. 요즘 묘비명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읽고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시인의 말마따나 “몸의 글자들이 갇혀” 있는데.
마지막 연에서 시인이 총정리를 하는데, “안 보이면 더 생각나는/ 내 것인 줄 알았던 그렇지만 아닌 것들/ 이제 제발 거두어 가길”이라고 흡사 묘비명에 적힌 글귀처럼 말한다. 묘비를 보면 주인 혹은 주인공의 생활 태도도 알 수 있다. 성실했는가 불성실했는가. 정직했는가 부정직했는가. 그런데 시인의 묘비명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이제 제발 거두어 가 달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절대 무덤도 안 만들고 묘비명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아래 묘비명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삶과 죽음 위에 차가운 눈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가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마음속에는 도덕률.
예이츠, 카잔차키스, 버나드 쇼, 칸트의 묘비명이다.
[여태천 시인]
197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여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스윙』『국외자들』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과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로 『경계의 언어와 시적 실험』『미적 근대와 언어의 형식』『김수영의 시와 언어』 외에 『현대시론』(공저),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편저), 『김달진 시선』(편저), 『오상순 시선』(편저) 등이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