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5] 심은섭의 "입술"
입술
심은섭
저 술은 가장 맛있는 밀주다
술잔은 필요 없으나 혼자서는 마실 수 없는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없다 그래도 만취할 수 있으므로
연둣빛 바람에겐 판매금지 품목이다
저 술 속에는 서로 영혼을 끌어당기는 만유인력 있다
저 술 속엔 푸른 악어가 산다
그 까닭에 저 술을 마시다가 화상을 입은 몇 그루의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았다
저 술은 곳간에 은닉한 농주가 아니다
저 술의 첫 잔은 찰나에 마셔야 하는 질환이고
때론 저 술을 마시고 홀로 걷는 낮달이 되기도 한다
저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온 전신의 경련을 일으키는
아편이다
두 사람만이 저 술을 마신다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동행하려는 몸수색이다
저 술은 가장 아름다운 종교다
―《시와시학》 2024년 여름호
[해설]
키스 미 퀵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감독한 명작 <시네마 천국>에는 무성영화 시대의 키스 신이 계속해서 나오는 장편이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소년 토토와 마을에서 유일한 극장의 영사기사인 알프레도가 나누는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우정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의 키스 신은 신부의 종교적인 검열에 의해 잘려나가고 극장 영사실에 자주 놀러 가는 토토는 잘린 필름들을 갖고 싶어하지만 알프레도는 때가 되면 주겠다며 안 보여준다. 훗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지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중년의 토토는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들을 보게 되고, 그 속에는 신부에 의해 삭제됐던 키스 신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아아 어이하여 남녀는 키스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인가.
몇 번 뵐 때 엄격한 혹은 무뚝뚝한 인상을 주었던 강릉의 심은섭 시인이 쓴 이 시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저 술은 가장 맛있는 밀주다”도 “술잔은 필요 없으나 혼자서는 마실 수 없는 술이다”도 옳은 말이다. “저 술 속에는 서로 영혼을 끌어당기는 만유인력 있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입술은 어찌하여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참으로 오묘한 신체의 부위다.
입술을 술로 칭해 “저 술은 곳간에 은닉한 농주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절묘한 변주다. 술도 입술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한 잔만 마셔도 온 전신의 경련을 일으키는 아편이라니, 입술에 취해야 하나 술에 취해야 하나. 차라리 죽어버려야 하나. “약속의 땅으로/ 동행하려는 몸수색”이니 일단 취하고 보자. 조용필은 <비련>에서 “아 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라고 노래하였고 헤이즈는 <입술>에서 “사랑해 고마워 영원히 네 곁에 있을래 말하던 네 고운 입술에 어쩌다 이별을 담아내게 한 거야”라고 노래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제발 빨리 키스해 줘요 이런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더욱더 바짝 끌어안아 주세요 제가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라고 노래하였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일갈한다. “저 술은 가장 아름다운 종교다”라고. 심은섭 시인은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명이 토마스(도마)인데 이런 표현이 조금도 신성모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남과 여가 꼭 껴안고 키스하고 있는데 예수님도 못 본 양 얼른 얼굴을 돌릴 터이니.

[심은섭 시인]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2004년 《심상》으로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8년 《시와세계》 겨울호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었다. 5·18문학상, 강릉정심문학상, 강원문학작가상, 세종문화예술대상, 강원도문화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했으며 제1회 상상인 시집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물의 발톱』과 시선집 『너의 종이 되리니』, 문학평론집 『한국 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발간. 《시와세계》 편집기획위원 역임.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계간 《시산맥》 편집기획위원, 월간 《모던포엠》 편집위원.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